문학에 대한 교육인가, 문학을 통한 교육인가.
조금 교육학적인 이야기가 주 입니다.
(최종 수정 : 2010. 5. 9.)
(본문은 편의상 평어체를 사용하겠습니다.)
난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지금까지 얼마 되지 않는 기간 살아오면서 고집스럽게 취미는 독서라고 적어왔고 다른걸 하는 것은 아껴도 책은 납죽납죽 잘도 사서 모아왔다. 이런 내가 책에 대한 정보를 얻었던 곳은 다름아닌 교과서였다. 교과서에 실린 글.
비록 전체가 들어있지는 않았지만, 이를 보고 전체의 내용이 궁금하여 사서 읽고 다시 이 작가의 글을 찾아서 보고 읽은 책이 많았다. 그러니까 내게는, 문학(국어)교과서란 결국 카달로그였다. 학년 말이 되어 새 교과서를 보게 되면 가장 먼저 국어교과서를 펴보고 훑어보고는 맘에 드는 글은 기를 쓰고 전문을 구해다 읽었다. 다른 친구들은 몰랐었지만 아마 내가 이러는 모습을 알았더라면 속으론 ‘저녀석 재수없네’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국어점수를 잘 맞는 편은 아니었다. 이는 내가 책을 읽고 남기는 바와 교육평과과정에서 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었는데 이를테면, 나는 책을 읽고 대강의 줄거리와 나의 느낌이 하나로 뭉쳐 이미지처럼 기억을 해왔다. 이러한 나만의(?) 방법은 꽤 효과가 있어서 아직까지도 집에 있는 책은 비록 얼마 되지는 않지만 책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물론, 읽은 책을 다시 읽고 또 읽는 나의 독서습관이 이를 도운 탓이겠지만.)
하지만 학교가 요구하는 바는 조금 달랐다. 이를테면 이 책이 어떠한 사회상을 담고 있었는가 이 문맥의 구절은 어떠하며 이 소설은 구성이 독특한데 이러한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등 이었다. 그래서 난 언제나 국어점수는 별로 높은 편이 아니었고 이는 내가 나중에 학교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깨달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른바 ‘요령’을 알아낸 것이다.
그 후에는 갑자기 점수가 수직상승하여 결국 수능에서는 가장 적은 점수의 문제를 한 문제 틀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더군다나 가채점결과에서는 전부 맞았다고 나왔었는데, 나의 착오로 오마킹을 하였든 혹은 사고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그 후로 그 ‘요령’은 완전히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고 다시 꺼내게 된 계기는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외를 시작했을 때였다.
또 한가지 회상. 나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들으면 희한하게 생각할 만큼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에서 문학적 감동을 받지 못하게 된 점이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되는 큰 이유중 하나인데, 시를 보면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연과 연을 나누고 구조를 파악하게 된다. 더군다나 중등교육시절 배웠던 시라면 외재적 관점과 내재적 관점등의 요소가 되살아나서 머릿속을 부유한다. 가령 <진달래 꽃>을 보면 ‘아 저건 민족의 주권을 부르짖는 노래였지.’라고 생각해 버리게 된다. 중등교육시절 배웠던 시 이론을 준거로 모든 시를 판단해 버리는 문제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소설은 그러지 않았냐고? 다행히도 소설은 수업을 나가기 이전 거의 한번 이상씩은 읽어보았으며(위에 기술한 나의 행동들을 떠올려보라.) 이미 글에 대해 나름의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별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의 글이 입시도구로 이용되는게 싫다는 중앙일보의 글을 읽었다. 그 때서야 저작권 법 25조*(접은글 참조)를 처음으로 읽어보았고 나 역시 우려를 하며 댓글을 보았는데 수준이하의 댓글과 격양된 어조의 댓글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25조(학교교육 목적 등에의 이용) ①고등학교 및 이에 준하는 학교 이하의 학교의 교육 목적상 필요한 교과용도서에는 공표된 저작물을 게재할 수 있다.
②특별법에 따라 설립되었거나 「유아교육법」, 「초·중등교육법」 또는 「고등교육법」에 따른 학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교육기관 및 이들 교육기관의 수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교육지원기관은 그 수업 또는 지원 목적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공표된 저작물의 일부분을 복제·배포·공연·방송 또는 전송할 수 있다. 다만, 저작물의 성질이나 그 이용의 목적 및 형태 등에 비추어 저작물의 전부를 이용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에는 전부를 이용할 수 있다.<개정 2009.4.22>
③제2항의 규정에 따른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는 자는 수업목적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제2항의 범위 내에서 공표된 저작물을 복제하거나 전송할 수 있다.
④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저작물을 이용하려는 자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기준에 따른 보상금을 해당 저작재산권자에게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고등학교 및 이에 준하는 학교 이하의 학교에서 제2항에 따른 복제·배포·공연·방송 또는 전송을 하는 경우에는 보상금을 지급하지 아니한다.<개정 2008.2.29, 2009.4.22>
⑤ 제4항의 규정에 따른 보상을 받을 권리는 다음 각 호의 요건을 갖춘 단체로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지정하는 단체를 통하여 행사되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그 단체를 지정할 때에는 미리 그 단체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개정 2008.2.29>
1. 대한민국 내에서 보상을 받을 권리를 가진 자(이하 “보상권리자”라 한다)로 구성된 단체
2.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할 것
3. 보상금의 징수 및 분배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을 것
⑥제5항의 규정에 따른 단체는 그 구성원이 아니라도 보상권리자로부터 신청이 있을 때에는 그 자를 위하여 그 권리행사를 거부할 수 없다. 이 경우 그 단체는 자기의 명의로 그 권리에 관한 재판상 또는 재판 외의 행위를 할 권한을 가진다.
⑦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제5항의 규정에 따른 단체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개정 2008.2.29>
1. 제5항의 규정에 따른 요건을 갖추지 못한 때
2. 보상관계 업무규정을 위배한 때
3. 보상관계 업무를 상당한 기간 휴지하여 보상권리자의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을 때
⑧ 제5항의 규정에 따른 단체는 보상금 분배 공고를 한 날부터 3년이 경과한 미분배 보상금에 대하여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승인을 얻어 공익목적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다.<개정 2008.2.29>
⑨제5항·제7항 및 제8항의 규정에 따른 단체의 지정과 취소 및 업무규정, 보상금 분배 공고, 미분배 보상금의 공익목적 사용 승인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⑩제2항의 규정에 따라 교육기관이 전송을 하는 경우에는 저작권 그 밖에 이 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권리의 침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복제방지조치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중앙일보에 있는 "지금까지 작가가 교과서 수록 거부를 공식으로 밝혀온 적은 없었다”며 “작가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교과서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김태훈 교과서 기획과장님의 말부터 살펴보자면 어째서 작가가 허락하지 않은 글을 싣지 않으면 좋은 교육이 제공되기 어렵다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겠다. 이번에 '교과서 수록 거부'는 교육이 '입시도구'로 쓰일 것을 우려하여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를 좋은교육이 제공되기 어렵다고 해석하는 것은 결국 이분의 교육관은 '입시'로 정의되는 교육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라고 넘겨짚을 소지가 충분하다.
난 전적으로 김영하님의 말에 동감한다. 물론 우리는 다음세대를 위하여 지식을 전승해야할 의무가 있다. 이른바 '문화유산[각주:1]'의 선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창작물에 대하여 보호받을 권리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번일은 자신의 창작물을 원문 그대로를 소개, 혹은 단순 인용이 아닌 교과서 저자의 자의적 해석이 첨부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이른바 '학교교육'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작품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는 것이 저작권 법 25조에 깔린 생각인데, 우리나라의 '학교교육'.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학교교육이 그 대의에 어울릴 것인가 하는 생각엔 개인적으로 비관적이다.
여기서 잠시 국어교과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7차 교육과정 이전까진 국어는 국정교과서로써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같은 교과서로 공부를 해야만 했다. 이 후에 심화/선택과목이 생겨서 10학년(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국정교과서인 국어를, 이후엔 화법, 문법, 작문, 독서, 문학, 생활국어 등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현재는 ‘국어’과목 역시 검정교과서[각주:2]가 되었다.
국정교과서 체계 하에서 전국의 모든 학생이 같은 교재로 유사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결국 자유로운 학생의 사고를 획일화 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또한 평가도 유사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어 결과적으로 문학을 문학으로서가 아닌 평가의 도구로 삼아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한 국정교과서 체계를 유지하던 국어과가 검정교과서 체계를 채택하면서 교과서의 전문성과 다양성은 어느정도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각주:3].하지만 '검정(혹은 심의, 심사)'이라는 과정 자체가 집필진의 의견보다는 심의자의 입장이 많이 반영된다는 점. 또한 논란이 될만한 요소는 사전에 제거하는 집필진의 경향이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완전한 전문성과 다양성을 획득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교과서란 결국 ‘교과’를 문서화 해놓은 자료다. 더군다나 우리가 생각하는 교과서라는 것은 교과를 문서화한 자료로서의 교과서가 아닌 교재로서의 교과서. 즉, 교재일 뿐이다. 그러나 이 교재의 힘은 너무나도 절대적이다. 이렇게 우리는 ‘교과서’라는 이름하에 너무도 많은 신화를 만들어낸다. 평소에는 ‘이 책은 재미없다.’, ‘이 책의 저자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는 평을 서슴없이 하던 우리는 ‘교과서’라는 타이틀만 붙으면 책의 저자(혹은 심의자)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더군다나 성인들도 의식하고 있든 의식치 못하거든 ‘교과서’라는 타이틀이 붙은 책의 내용을 가려서 수용하는 부분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끼는데, 한창 자라나는 과정의 학생들은 교과서를 보고 이것을 가려서 수용할 수 있을까? 또한 자신의 가치관의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영향은 얼마나 절대적인가? 이는 생각해 볼 문제다.
내 글을 쓰는 실력은 스스로를 글을 별로 잘 못쓰는 젊은 작가라고 칭하신 김영하님에 비하면 새발의 피, 과장하면 그 안에 있는 헤모글로빈 한톨만큼도 못된다. 내 글이 교과서에 실릴 이유는 더욱 없지만, 나 역시 내 의도와 상관없이 가위질 당한 글이 교육에 ‘이용’[각주:4]되는 것은 반대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교육의 목적[각주:5]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봄직한 일이다.
또한 현재의 교과서 검정제도의 개선이 요구된다. 아니, 현재의 인정 교과서 제도를 남기고 폐지도 고려해봄직 하다. 국정교과서의 개념자체가 일제 식민지시대의 잔재라는 주장이 있으며, 이 것이 그렇게 틀리지 않은 설명이라는 점. 지금의 검정제도가 현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간상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점만 두고 보더라도 검정제도는 많은 개선점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참고할만한 논문으로는
-김창원, "문학 교과서 개발에 대한 비판적 점검", [문학교육학, Vol.11 No.-], 2003
정도가 있겠습니다.
- 문화유산을 누가 어떠한 기준으로 선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어왔고 아직도 결정되지 않은 문제이므로 여기서 다루진 않겠다. 다만 이 글에서의 '문화유산'은 관념적으로 우리가 다음세대를 위하여 준비할 '무언가'정도로 해석하는게 바람직하겠다. [본문으로]
- 교과서 저작에 국가나 그 업무 위임을 받은 공공기관(한국교육개발원 등)이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교과서로써, 각 과목 전공자들이 제작하여 교육과정과 검정기준의 적합성을 심사(심의, 검정)한 교과서를 의미한다. [본문으로]
- 현재 중학교는 16개회사 50종(국정 4종 포함), 고등학교는 총 22개 회사 57종(국정 2종, 심화선택 전부 포함)의 교과서가 있다. [본문으로]
- 여기서의 ‘이용’이라 함은 교육이 교육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다른 목적으로 쓰이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 교육기본법 제 2조, 법률 제 8915호 일부 개정 (2008. 3. 2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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