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궤짝' - 침전

연극, 궤짝

이우천 연출, 이영석, 홍윤희, 곽수정, 천정하, 임진순, 이미숙, 송윤, 이유진, 이준혁, 정광영 출연, 2016.



  오랜만에 대학로에 다녀왔습니다. 간간이 연극을 보면서 제 성에 차지 않아 후기를 남기진 않았는데요. 이번에는 초대를 통해 다녀온 연극이라 조금 의무감에 글을 정리해봤습니다.


  '궤짝'이라는 연극입니다. 긴 내용은 쳐내고 조금 짤막하게 정리해볼게요.




궤짝

  '궤짝'이라는 제목은 참 매력적인 제목입니다. 어떤 의미로 주제를 잘 함축하는 소재거든요. 연극에 등장하는 소품을 제목으로 삼는 건 이 극을 쓴 극작가 윤미현의 특징이라는 내용을 어디선가 봤습니다. 저는 이 극작가의 극은 처음 봤지만요.




  소개를 받고 포스터를 보면서 '이 연극 매우 무겁고 호불호가 갈리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채색으로 조형된 포스터, 그리고 삶과 죽음의 페이소스와 같은 키워드가 곳곳에 묻어났기 때문인데요.


  경험상 주제 자체가 난해하므로 여기에 어떤 생각을 담는가, 그리고 이걸 풀어내느냐의 문제가 극의 완성도를 크게 가르기에 보러 가기 전부터 꽤 걱정이 컸습니다. 3부작의 1편이라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좀 우려했고요.




  연극의 포스터는 등장하는 배우 중 여성 배우를 모델로 해서 총 네 가지가 제작됐습니다. 다 비슷한 톤으로 무시무시하게 담아냈네요. 포스터만 보더라도 연극의 분위기가 상상이 되죠? 그리고 이 상상은 무섭게 맞아 떨어집니다.


  흉물스런 폐가. 여기에는 여러 노인이 저마다 자기 일을 반복합니다. 음식을 절구에 찧어 먹는 노인, 화분에 씨앗을 심는 노인, 리어카에 병든 남편을 이고 지고 다니는 노인, 관에 누워있는 노인, 그리고 이들과 조금 다른 행보를 보이는 노인이 있습니다.


  집주인으로 보이는 이 노인은 과거 자식의 흔적을 소중히 쓰다듬으면서 이따금 무대 뒤편으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뭔가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리는데요. 이는 사실 궤짝을 짜는 소리였습니다.




  연극이 흘러가며 이 노인이 다른 노인과 유리된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집주인인 노인과 다른 노인들을 가르는 기준은 삶과 죽음. 살아있되 죽어가는 노인과,죽어서 정말 마지막을 기다리는 노인들입니다.


  마지막을 기다리는 노인들은 아직 산 노인이 자기들의 이야기가 슬슬 들리는 것을 보니 곧 삶의 불이 꺼지리란 걸 예측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관에 누워있던 노인이 영영 갔다는 걸 알고 편히 갔다고 소회를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들의 공간은 삶과 죽음 사이의 어디쯤이 될 수도 있겠네요.




  궤짝을 짠 이유는 자기를 찾지 않는 자식들을 생각해서입니다. 죽은 후 자기를 찾아오면 번거로울까 봐, 남이 흉볼까 두려워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궤짝을 짭니다. 그리고 스스로 마지막 날을 정해 추억과 함께 궤짝에 들어갑니다.


  어찌보면 여기서 궤짝은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관문이 됩니다. 그리고 궤짝을 짜면서 남기는 회한들이 이 연극의 주제와 내용을 이룹니다.




침전된 연극

  연극의 감정선은 크게 오르내리지 않습니다. 자기 죽음을 준비하는 노인과 이미 죽은 노인은 각자의 인생을 대사로 쏟아낼 뿐입니다. 이 연극을 관통하는 감정은 한(恨), 그러니까 회한(悔恨)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던 아들은 나이 먹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자 씨앗을 심는 자기를 힐난합니다. 나를 찾지 말라고 집을 나서니 정말 나를 찾지 않고, 굶어 죽는 게 무섭다며 씨앗을 심던 노인은 결국 밖에서 굶어 죽습니다.




  임플란트해달라기 미안하고, 전기세 걱정해 믹서기도 안 쓰고, 그저 음식을 찧어 먹던 노인은 음식 찧는 소리에 층간소음이 문제가 되고, 오히려 가족들에게 핍박받습니다. 밥이라도 얻어먹으려고 미친 척을 하고, 집을 나간다니 가족들이 오히려 절굿공이를 쥐여줍니다.


  남편을 리어카에 이고 지고 다니며 자식들에게 남편, 그러니까 자식들의 아버지를 판매하려고 하지만, 자식들은 언제 죽을지 보장 없는 아버지의 수취를 거부합니다.




  아직 살아있는 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의 추억을 반추하지만, 자식은 죽을 때가 될 때까지 자신을 찾지 않습니다. 자식들은 그저 내 몸을 여관처럼 쓰고 간 것 같다는 노인. 손님이 빠진 여관은 허무하고 그 자리는 회한이 남습니다.


  이 모든 내용은 노인들의 대사로 채워집니다. 격렬한 감정없이 그저 한탄만 이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연극은 어둡고 분위기는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전달력도 떨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처럼 연극이 친절하지 않습니다. 노인과 노인이 삶과 죽음으로 나뉘어있다는 것은 중반쯤 되면서야 비로소 선명해집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지나더라도 연극은 명쾌하지 않습니다. 모든 게 밑바닥으로 가라앉습니다. 이걸 차분하다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네요.




  그러다 보니 보는 내내 마음이 꽤 불편했습니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기보다는 남은 침전물을 맛보는 마냥 무겁고 텁텁한 기분이었습니다. 군데군데 해학적인 부분도 있었습니다만, 정말 사소한 부분이었고요.


  연극의 진행은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무난하게 흘러갔습니다만, 불필요해 보이는 배역이 몇 보여 군더더기로 느꼈습니다.




  삶과 죽음을 고민하기보다는 여기에 그려진 노인 문제에 좀 더 눈이 가는 공연이었습니다. 아주 만족스럽지만은 않은 공연이었어요. 불친절해서 소통하기가 어려운 연극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삶과 죽음을 고찰했다기보다는 단순한 현상을 극대화해서 제시한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연극은 짧게 막을 내렸습니다만, 뒤늦게 감상을 정리해봤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레이니아였습니다.:)




"위 연극을 소개하면서 공연사로부터 티켓을 제공 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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