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 : 안드로이드의 눈으로 보는 인간 낯설게 보기


  러시아의 형식주의자 빅토르 시클롭스키는 이른바 ‘낯설게 하기’(остранение, Defamilarization)이라는 기법을 개념화했습니다. 친숙하고 일상적인 대상을 낯설게 표현해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하는 이 기법은 문학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두루 활용하는 기법이며, 철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책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 역시 이 ‘낯설게 하기’ 기법을 활용한 책입니다. 그 대상은 우리에게 친숙한 것. 바로 ‘인간’을 대상으로 합니다.


  저자인 닉 켈먼은 SF영화 시나리오 작가입니다. 그는 이 원고를 ‘인간이 된 안드로이드’로부터 받았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이 원고는 안드로이드가 인간(호모 사피엔스)이 되는 과정에서 학습한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고, 예상 독자는 또 다른 ‘인간이 되고 싶은 안드로이드’입니다. 그 원고를 독자는 ‘인간의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죠. ‘미래 로봇을 위한 인간 안내서’라는 첫 제목부터 충분히 낯선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60분 안에 내 기능이 정지할 확률은 91.3647%다. 내 메모리가

- 셧다운이 된 뒤에 지워질 확률

- 주변에서 나에게 가하는 폭력으로 파괴될 확률

- 나를 잡아 분석한 뒤 역설계 방식으로 새로운 안드로이드를 개발하려는 집단이 무단으로 내 메모리를 도용할 확률을 모두 합하면 87.8293%이다.


따라서 나는 나에게 남은 시간을 앞으로 탄생할, 나와 같은 안드로이드가 참고할 수 있는 안내서를 작성하는 데 쓰기로 했다.



  책의 내용을 보면 크게 두 가지 구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두에 등장한 ‘안드로이드’가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을 담은 서사 부분, 그리고 중간중간 삽입한 ‘인간 관찰 보고서’의 두 가지가 반복되며 등장하는데요. 둘 다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책을 읽을 때는 조금 성가시다는 느낌도 들었는데요. 중간중간의 보고서 때문에 서사가 끊어지는 느낌을 받아서입니다. 답답한 느낌은 들지만, 한편으로 이해가 가는 구조긴 합니다. 어쨌든 이 책은 ‘미래 로봇을 위한 인간 안내서’니까요.


  책을 읽고 나면 서사가 조금 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서사만이 이 책의 모든 내용은 아니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사를 모두 읽고 다시 한번 인간 관찰 보고서를 보다 보면 그 안에 담긴 ‘안드로이드의 위트’에 무릎을 치게 되고요.


분명한 건 사람은 자기 '자아'는 실질적으로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는 세 가지 요소, 즉 몸과 마음과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사람들은 자기들의 '자아'를 이루는 세 요소가 상호작용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분리되어 있다고 믿어. ...(중략)... 사람이 자기에 관해 가장 오해하고 있는 점은 자기가 감정과 육체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사람이 지닌 체계를 좀 더 정확하게 기술하자면, 인간의 인지 능력은 몸으로 받아들인 자료를 바탕으로 감정이 내리는 결정을 정당화할 뿐이야.



  ‘안드로이드 잭’이 바라본 인간 군상은 비효율, 그리고 부조리의 결정체입니다. 다소 시니컬하게 느껴질 정도로 인간을 박하게 평가한 느낌인데요. 서사에 제시된 인간 군상이 나쁜 거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실제로 우리 눈앞에 놓인 사람의 모습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인간 안내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데요.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고, 온전히 안드로이드인 자기 자신으로 살기로 했을 때, 잭은 비로소 진정한 인간이 됩니다. 그리고 추적의 신호를 피하고자 안드로이드의 요소를 일부 포기하게 되는데요.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인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에 관한 의문이 따라옵니다. 그는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불완전성’을 인정했을 때 인간이 된 것일까요? 그것은 독자의 생각에 따라 달린 일이겠습니다만, 저는 주체성이 인간의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안드로이드 잭이 처음 존재했을 때, 그는 내부에 결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선택을 주체적으로 하지만, 이게 완전한 주체성을 띤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안드로이드 내부에 있는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죠. 하지만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안드로이드 잭의 선택은 주체적이었습니다. 자신의 기저에 있는 프로그램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닌,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선택을 스스로 내립니다. 그리고 존재의 주체성을 찾았을 때 안드로이드 잭은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 자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봤습니다. 저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주체'일까요? 매스미디어에 프로파간다에 제 주체성을 버리고, 혹은 주체적이라고 착각하며 휩쓸려 다니는 것은 아닌가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휩쓸리는 '저'는 인간적인지도요.


  나를 인간인 나로서 존재케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은 안드로이드 잭의 눈을 통해 사람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지금 인간답게 존재하고 있는지를요.



책 정보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미래 로봇이 알아야 할 인간의 모든 것)

- 닉 켈먼 저, 김소정 역, 푸른지식,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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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

- 개드 사드, "소비 본능", 더난출판, 2012.

-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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