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간이탈자' -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영화를 보는 제 주관적인 해석영화의 내용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간이탈자

곽재용 감독, 임수정, 조정석, 이진욱 외 출연, 2016.


  레이니아입니다. 요새 영화관은 마블의 신작. 캡틴아메리카 : 시빌워로 연일 흥하고 있을 겁니다. 그 전에 반짝 특수를 누린 영화도 몇 있는데요. 대표적인 영화가 오늘 소개할 '시간이탈자'입니다. 시빌워가 개봉하기 전에 예매율이 거의 30%에 오르는 광경을 봤는데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얼떨결에 따라가 보고 왔습니다.


  결론적으로 전 그 당시에 꽤 재미있게 보고 왔다고 생각했는데요. 지나면서 생각을 점점 되짚어 보니 몇 가지 이야기할 거리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서둘러 정리해봤습니다. 시간이라는 흥미롭지만, 위험한 소재를 다룬 영화 '시간이탈자'입니다.




시간, 독이 든 성배인가?!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매우 많습니다. 당장 떠올려봐도 여러 영화가 있는데요. 시간이 단순 소재로 쓰인 때도 있고, 시간과 인과관계가 얽혀 중요한 축으로 작용한 영화도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중요한 축으로 삼아서 흥행한 영화를 꼽아보면 그 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시간을 소재로 삼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가 꽤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억나기에 시간을 소재로 해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거의 기억나지 않네요. 시간 자체는 매우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시간은 서사에서 원인에 따른 결과를 끌어내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인물의 갈등을 그릴 때 환경적인 혹은 운명적인 갈등을 그릴 때 쓰기 좋고요. 그리고 보이지 않는 만큼 여러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간으로 흥한 영화가 거의 없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시피 위험한 소재가 됩니다. 시간을 소재로 했을 때 인과관계가 깔끔하지 않을 수 있어 자칫하면 작위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요. 관객을 이해하게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이라는 소재가 독이 든 성배라고 보았습니다. 매력적이지만, 독이 될 수 있다고요.



  시간이탈자도 시간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시놉시스는 흥미롭습니다. 우연한 사고로 생사의 고비를 넘긴 형사는 꿈에서 어떤 음악 교사를 생생히 보게 됩니다. 문제는 이 교사가 약 32년 전의 사람이라는 건데요. 게다가 32년 전 교사도 형사와 같은 시기에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꿈으로 형사를 보기 시작합니다. 32년 후의 형사를요. 이렇게 두 사람은 32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서로를 보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음악 교사의 약혼자인 과학교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32년 후인 현재에도 이 과학교사와 똑같이 생긴 영어교사가 나오죠. 이 신기한 우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찰나 32년 전의 과학교사가 끔찍하게 살해되었다는 것을 형사가 보고, 이걸 꿈에서 교사가 다시 봅니다. 이 일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죽음의 고비를 통해 두 사람이 시간의 흐름에서 이탈해 서로를 보므로 '시간이탈자'라는 제목이 붙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근래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시그널'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시그널은 서로가 소통하는 기회가 비정기적으로 주어지나, 이들이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탈자는 서로를 볼 수만 있는 소극적인 소통입니다. 이들이 서로가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처음엔 알지 못합니다. 과거와 현재의 소통이 일어나면 어쩔 수 없이 과거가 움직이고 현재는 조언자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이탈자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인물과 적을 배치해 긴장감을 살립니다. 그래서 과거에서도 현재에서도 인물들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게 됩니다.


  시놉시스만 봐도 알 수 있던 내용이나, 얼굴이 똑같은 여자 주인공을 등장하는 당위성을 위해 영화는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넣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게 꽤 부자연스럽습니다. 감정 과잉이라는 생각과 함께 굳이 이 장면을 넣어야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리고 영화는 점점 당위성을 위해 불필요한 노력을 하기 시작합니다.


인과 관계의 당위성을 위한 노력

  영화는 점점 스릴러의 모양새를 띄며, 인과관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돌이켜 보면 딱히 맞추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과거를 바꾸는 순간에 현재에 있는 형사가 같은 장소에 있다든지, 그래서 현재가 바뀌는 순간을 지켜본다든지 하는 내용은 작위적이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리고 과거를 바꾸는 게 어떻게 돌아올지 깊은 고민조차 하지 않고 '바꿨구나...!'하는 형사를 보면 실로 놀라울 정도입니다.


  영화는 나비효과와 같은 요소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바꾸면 이와 관련된 현재만 딱 바뀔 뿐입니다. 이 여파도 무척 축소돼 있습니다. 마치 잘못된 내용만 들어내 수정하고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서로를 보는 장면이 등장할 때쯤은 짐작이야 했겠지만, 반지가 현재로 이어지는 장면은 좀 너무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반지가 왜 이어져야 했는지도 뻔하고요.



  과거의 핵심사건을 해결한 후에 현재는 더욱 놀랍습니다. 핵심사건이 해결한 후에야 현재 모습이 대폭 달라집니다. 얼마나 심하게 달라지는지 주인공의 모든 주변 관계가 바뀝니다. 이 정도면 뇌를 완전히 재구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그리고 달라진 현재가 행복한 과거의 모습과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 너무 심하게 끼워 맞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엔딩까지도요.


  원인에 따른 결과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는 서술자가 손대지 않고 어떤 흐름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게 옳습니다. 그러나 '시간이탈자'속의 인과관계는 서술자가 원하는 의도를 위해 너무 애를 썼습니다. 그 인과관계의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불필요한 장면이 나오기도 했고요. 그래서 많은 관객이 서사의 흐름을 어색하다고 느끼고,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 하나가 또 망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매력적인 소개가 많고 중요한 장면이 많으면 뭐하나요. 이걸 서술자 관점에서 제멋대로, 꿰어버리는 바람에 순식간에 호소력 없는 이야기가 됩니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누가 그랬던가요.


스릴러의 쬐는 맛.

  서사는 부족합니다만, 결과적으로 꽤 재미있게 봤다는 느낌은 남았습니다. 제가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습관이 있는 것 같은데요. 일단 말이 안 되는 내용은 덮어두고 영화의 표층을 쭉 따라가서 그렇게 느끼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는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처럼 곰곰이 따지고 들면 영화의 문제점을 이렇게 짚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혹평이 워낙 많긴 하지만, 영화의 쬐는 맛(?!)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방독면을 쓴 시간을 관통하고 있는 범인은 누구인지, 그리고 왜 여자 주인공은 같은 얼굴로 시간을 관통했는지. 영화는 이러한 정보를 보여줄 듯 말 듯 고삐를 죄고 달립니다. 이렇게 영화는 과거를 수정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쉴 새 없이 보여줍니다. 이렇게 소위 '심장을 쪼이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이 고조되는 긴장감을 즐기면 시간이탈자는 꽤 볼 만한 영화가 됩니다. 선남선녀 배우들은 덤이고요. 하지만 이 질문에 답을 구하려고 하면 그때부터 영화의 재미는 급격하게 식어갑니다. 왜냐하면, 관객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게 하려는 '불필요한 노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거든요. 그리고 그 지점부터 영화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한편의 콩트를 향해 치닫고요.




  영화를 볼 당시엔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보며 재미있게 보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글로 정리하려고 하니 점점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리뷰 쓰다가 즐거움이 날아가다니... 하 제 즐거운 기억 돌려내세요...(?!)


  한편으로는 영화도 자신의 취약점을 알고 있었기에 자극적인 스릴러로 시선을 돌리고자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볼 때와 보고 정리할 때의 감정이 달라져 조금 의아하면서도 슬픈, 영화 '시간이탈자'입니다. 그럼 지금까지 레이니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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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 재밌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