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다녀오며..
글 작성자: 레이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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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왔다. 새로 이사를 온 집은 책상 옆에 큰 창이 있어서 그리 예쁘진 않지만 창 밖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점이 멋진 집이다. 더불어 여태 가지고 있는 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큰 책장이 생겨서 누구보다 마음에 든다.
이사는 처음 계획을 세웠을 때부터 그 거대한 윤곽이 드러났다. 이사를 간다는 것은 좋았다. 그 이후에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지를 정하는 것이 문제였을 뿐. 이사를 갈 집을 알아볼 기회는 연이 닿아 쉬이 구할 수 있었다. 또한 이사를 가기 위해 지금 사는 집을 처분하는 문제도 약간의 트러블은 있었지만 무난하게 진행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사를 하기 한달여 전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삿짐센터를 통해 이사를 하긴 하지만, 중요한 물건들은 따로 챙겨놔야 뒤탈도 없고 미리 짐을 싸두고 주기를 해두면 쉬이 원상복구 시킬 수 있다는 복안이었다. 18년간 살아왔던 집은 괴물같이 짐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토하고 또 토해내어도 짐은 전혀 줄지가 않았다. 단정한 집이 불과 보름만에 박스테이프로 칭칭감긴 박스로 채워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중요한 물건이 항상 손에 닿는 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손에 닿는 것은 빈번한 필요에 의한 분류법일 뿐, 그 안에서 중요함의 척도를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옛 친구의 편지, 지인들과의 편지와 오래전부터 써왔던 일기장과 메모집. 이 것들이 손에 잘 안닿는다고 중요하지 않는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결국 중요한 물건을 찾아내기 위해서 온 집안을 들쑤시고 헤집고 다녀야만 했다.
미리 준비를 한다는 것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가령 물건을 미리 포장해 두었는데 예기치 않은 일로 그 물건이 필요한 경우가 생긴다면? 더군다나, 정확하게 뭐가 들어있다는 주기가 아닌 어느 방에 가져다 놔야한다는 주기만 해놓았을 경우에는 그 방의 모든 짐을 헤집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곤 했다. 특히, 당분간은 쓸 데 없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은 꼭 온 짐을 헤집도록 만드는 주 원인이 되었다.
이사 전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저녁에 조촐한 만찬을 벌였다. 가구들도 치우고 이젠 창고같은 집 거실에서 상을 펴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밥과 가볍게 술을 마셨다. 이 집에 이사오기 전에 했던 일들, 이사와서 처음으로 먹었던 음식과 이사온 이후에 쌓인 기억들..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많은 생각을 한 자리였다. 알게 모르게 18년간의 추억은 이 집과 연결되어 있었다. 물이 새서 덧대어 놓은 벽지와 어릴적 장난에 금이간 벽과 메운 흔적들, 가구가 빠진 자리에는 노르스름한 자욱이 남아 있어 어떠한 크기로 얼마만큼 이 자리에 머물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모두가 다 나와 관계되어 있는 흔적들이었다. 내 삶의 체취, 내 삶의 흔적.
그렇게 우리는 이사를 갔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이사는 시작부터 끝까지 우연적인 사건의 남발이었다. 제시간에 와야할 가구나 차가 도착하지 않았고 물건을 나르는 도중 새로운 물건을 발견하였으며, 그만큼 원래 있던 물건을 잃어버렸다.
옮긴 오디오와 컴퓨터는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결국 오디오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버렸고 컴퓨터는 완전분해 후 재조립까지 한 후에야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짐은 완전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아니, 정리할 시기를 놓쳐버려 이젠 이대로 굳어져버린 것 같다. 아마 여기서 점차 내 삶에 맞게 조금조금씩 변하리라. 그렇게 생각한다. 또 어디선가 눈에 띄지 않는 하자가 보여 고치고 수리하고 그렇게 살아가겠지.
그렇게 우리는 이사를 왔다.
이사는 처음 계획을 세웠을 때부터 그 거대한 윤곽이 드러났다. 이사를 간다는 것은 좋았다. 그 이후에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지를 정하는 것이 문제였을 뿐. 이사를 갈 집을 알아볼 기회는 연이 닿아 쉬이 구할 수 있었다. 또한 이사를 가기 위해 지금 사는 집을 처분하는 문제도 약간의 트러블은 있었지만 무난하게 진행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사를 하기 한달여 전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삿짐센터를 통해 이사를 하긴 하지만, 중요한 물건들은 따로 챙겨놔야 뒤탈도 없고 미리 짐을 싸두고 주기를 해두면 쉬이 원상복구 시킬 수 있다는 복안이었다. 18년간 살아왔던 집은 괴물같이 짐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토하고 또 토해내어도 짐은 전혀 줄지가 않았다. 단정한 집이 불과 보름만에 박스테이프로 칭칭감긴 박스로 채워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중요한 물건이 항상 손에 닿는 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손에 닿는 것은 빈번한 필요에 의한 분류법일 뿐, 그 안에서 중요함의 척도를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옛 친구의 편지, 지인들과의 편지와 오래전부터 써왔던 일기장과 메모집. 이 것들이 손에 잘 안닿는다고 중요하지 않는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결국 중요한 물건을 찾아내기 위해서 온 집안을 들쑤시고 헤집고 다녀야만 했다.
미리 준비를 한다는 것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가령 물건을 미리 포장해 두었는데 예기치 않은 일로 그 물건이 필요한 경우가 생긴다면? 더군다나, 정확하게 뭐가 들어있다는 주기가 아닌 어느 방에 가져다 놔야한다는 주기만 해놓았을 경우에는 그 방의 모든 짐을 헤집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곤 했다. 특히, 당분간은 쓸 데 없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은 꼭 온 짐을 헤집도록 만드는 주 원인이 되었다.
이사 전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저녁에 조촐한 만찬을 벌였다. 가구들도 치우고 이젠 창고같은 집 거실에서 상을 펴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밥과 가볍게 술을 마셨다. 이 집에 이사오기 전에 했던 일들, 이사와서 처음으로 먹었던 음식과 이사온 이후에 쌓인 기억들..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많은 생각을 한 자리였다. 알게 모르게 18년간의 추억은 이 집과 연결되어 있었다. 물이 새서 덧대어 놓은 벽지와 어릴적 장난에 금이간 벽과 메운 흔적들, 가구가 빠진 자리에는 노르스름한 자욱이 남아 있어 어떠한 크기로 얼마만큼 이 자리에 머물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모두가 다 나와 관계되어 있는 흔적들이었다. 내 삶의 체취, 내 삶의 흔적.
그렇게 우리는 이사를 갔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이사는 시작부터 끝까지 우연적인 사건의 남발이었다. 제시간에 와야할 가구나 차가 도착하지 않았고 물건을 나르는 도중 새로운 물건을 발견하였으며, 그만큼 원래 있던 물건을 잃어버렸다.
옮긴 오디오와 컴퓨터는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결국 오디오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버렸고 컴퓨터는 완전분해 후 재조립까지 한 후에야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짐은 완전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아니, 정리할 시기를 놓쳐버려 이젠 이대로 굳어져버린 것 같다. 아마 여기서 점차 내 삶에 맞게 조금조금씩 변하리라. 그렇게 생각한다. 또 어디선가 눈에 띄지 않는 하자가 보여 고치고 수리하고 그렇게 살아가겠지.
그렇게 우리는 이사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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