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루시' - 과감한 설정과 부실한 구성


영화를 보는 제 주관적인 해석영화의 내용포함되어 있습니다.


루시(Lucy)

뤽 베송 감독, 스칼렛 요한슨, 모건 프리먼, 최민식 외 출연, 2014.


  레이니아입니다. 오랜만에 영화 게시글을 적습니다. 연극은 예전보다 많이 보러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생활에 투자할 시간이 적어지는 건 그만큼 삶이 팍팍해졌다는 뜻일까요? 슬프지만, 어느새 그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네요.

  이번 포스트는 개봉하고 얼마 되지 않아 보고 온 영화 <루시(Lucy)> 후기입니다. 빠르게 적는 게 좋지만, 늘 시간을 끌다가 인제야 적게 되네요. 게다가 이번 포스트는 포스트 준비 과정을 기록하면서 적다 보니 시간이 더 오래 걸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럼 각설하고 제가 보고 온 루시에 관해 적어보겠습니다.




영화의 구조와 소모되는 배우

  90분이라는 짧은 시간을 영화는 숨 가쁘게 달려갑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는 달려가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마치 ‘루시가 원래 뭐하던 사람인지 그런 건 군더더기에 불과할 뿐, 영화와는 관계없어.’ 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초반의 급격한 진행과 뇌 사용량이 늘어가면서 그 수치를 제시하는 구성은 영화를 쓸데없이 파편화하지만, 동시에 빠른 진행을 강조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속도감에 쫓기다시피 해야 했으며, 이런 구조 속에서 등장하는 모든 배우는 의미 없이 소모되었습니다.

  영화 <루시(Lucy)>에서 중요하게 꼽을 만한 배우는 스칼렛 요한슨, 최민식, 그리고 모건 프리먼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배우가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스칼렛 요한슨은 영화 후반부와 달리 어영부영 멍청한 모습으로 등장했다가 점차 각성하는 인물입니다.



  루시라는 인물이 타자에 의해 각성하여 질주하는 모습은 소정의 카타르시스를 줬지만, 이러한 과정이 오히려 스스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게 아이러니했습니다. 루시의 행동은 분명 확신에 찼지만, 그녀가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한계 때문이겠지요. 주인공이지만, 인상 깊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최민식은 ‘인물’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영화 홍보 시스템에서 단연 조명받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막상 최민식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카리스마가 넘치는 한국인 마피아답지도 않았고 그저 그런 흉악범의 느낌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루시가 너무 강해져, 최민식이 아무리 날뛰어도 전혀 긴장이 안 되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상 깊은 연기라고 극찬을 받았다지만, 영화에서 너무 무의미하게 소모되는 대표적인 인물이 최민식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모건 프리먼은 영화 속에서 당당하게 조연 캐릭터입니다. 영화 속 장면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친절하게 나래이션으로 설명해주고, 주제를 루시의 입으로 직접 털어놓게 하는 부담스럽게 친절한 인물이죠. 영화의 주제를 직접 드러나게 한다는 점에서 모건 프리먼은 <루시(Lucy)>라는 영화의 서술자이며, 이 서술자의 개입이 두드러진다고 하겠습니다.


루시의 철학

  <루시(Lucy)>는 우리는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대표적인 미신[각주:1]을 바탕으로 감독의 상상력이 빛나는 영화입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뇌의 능력이 10%라고 본다면, 100%가 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공상에 대한 답이 <루시(Lucy)>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영화는 절대 친절하지 않습니다.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과감하게 쳐버립니다.

  하지만 영화 끝에서 루시의 입을 빌려 감독의 메시지를 너무 직설적으로 던져버려서 당혹스러웠습니다. 친절한 모건 프리먼과 함께요.



  영화 내에서 끈질기게 ‘인식’과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를테면 달리는 차가 빛의 속도 이상이 되면 시간의 결을 초월하여 보이지 않는다는 예를 보여주면서 내리는 결론은 ‘시간의 연속성이 존재를 정의한다.’는 이야기입니다. 1+1=2인 건 인간이 정의한 개념이라고 설명하면서 인식할 수 있는 ‘개념’의 틀 안에 ‘진리’를 담는다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이 전제를 확장하자면, 생체적으로 인식 능력이 확장된 루시는 이 개념을 초월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겠죠. 그러나 위와 같은 생각이 참신한 생각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무척 진부한 철학인데요. 존재와 관련된 철학은 제가 주억거리지 않아도 충분히 유명하고 알려진 철학입니다.



  하물며 이런 철학을 쓸데없이 빙빙 돌리다가 거의 결론에 가까운 이야기를 작중 인물이 내뱉게 함으로써 관객이 고찰할 여지를 대폭 줄여버립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특성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이런 부분을 긍정하긴 어렵습니다. <루시(Lucy)>의 서사에서 현실적 상황은 단지 이야기가 진행되기 위한 조건일 뿐, 다른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도구적 현실은 파편화되어 영화 어딘가를 부유할 뿐이죠.

  결국, 영화는 파편화된 조각들을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얼기설기 묶어 포장했습니다. 완성도에 대해 고민은 하지 않은 채 말이죠.




  지난 영화 <그녀(her)>에서 빈칸 채우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퍼즐은 독자가 채울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했었는데요. <루시(Lucy)>역시 마찬가지입니다만, 퍼즐을 맞추게 한다고 모든 영화가 즐겁진 않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모든 사람이 철학자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화를 통해서 인식의 전환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할 수 없는 이유는 영화에 담긴 철학이 진부하고, 표현방법에 한계가 있어 큰 도움이 되기 어려우며, <루시(Lucy)>를 통해 철학을 논하기보다는 세상에 더 좋은 콘텐츠가 많이 있다는 점.

  그리고 상상력은 <리미트리스>나 <트랜센던스>만 못했고, 풀어가는 방식 또한 엉성했기에 저는 <루시(Lucy)>를 높이 평가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설정이 과감할수록 그 구성이 탄탄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영화 <루시(Lucy)>에 관한 감상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지금까지 레이니아였습니다.:)








  1. 뇌 과학과 관련된 대표적인 미신이며, 관련 논문을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말의 모순점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100%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때, 우리가 사용하는 뇌가 10%라는 걸 정의할 수 있다는 점이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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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토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는데 완성도가 너무 낮고 최민식 배우는 왜 영화에 투입 됐나 싶을 정도로 튀지 않는 캐릭터라고 생각하며 봤습니다. 루시랑 비슷한 영화 '리미트리스'라 있는데 내용도 비슷하지만 스토리 완성도는 훨 높다고 봅니다. 너무 많은 내용을 한 영화에 담을려다 보니 어설픈 영화가 나온지 않았나 싶습니다. 포스트 잘 읽었습니다!
    • 말씀하신 부분과 같은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막판에 약 부작용까지 해결해버린 리미트리스 주인공 부럽고 그랬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