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디스 디스토피아' - 조용한 절망의 병맛 연극
글 작성자: 레이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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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는 제 주관적인 해석과 연극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디스 디스토피아
구자혜 연출, 윤현길, 이리, 장윤실, 박경구, 조경란, 조위상, 전박찬, 최순진 출연, 2015.
레이니아입니다. 저는 최근서울문화재단이 2014년 연극부문 유망예술지원 프로그램 ‘뉴스테이지’로 선정한 연극 세 편 중하나인 <디스디스토피아>라는 연극을 보고 왔습니다. 공연기획사의 초대로 다녀왔습니다. 뉴스테이지 선정 연극은 그리 오래 상연하지 않는데요. 그래서 조금 덜 익은 생각을 가지고 빠르게 정리해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좀 더 원대한 글을 써보겠다는 마음으로 숙고해봤지만, 마음의 부담감만 늘어서 힘들더라고요. 초고는 훨씬 이전에 써뒀지만, 업로드가 늦었습니다. 공연 중 사진 촬영은 허가되어있지 않아 사진을 마땅히 찍은 게 없는데요. 그러다 보니 중간에 삽입할 사진이 마땅히 없어서 사진을 요청하고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기다려도 사진이 오지 않아 그냥 사진이 없는 채로 이미지를 구해서 올려보겠습니다.
디스 디스토피아(This Dystopia)
연극은 굉장히 많은 은유와 상징이 들어가 어려운 연극이었습니다. 연극에는 다양한 형태의 존재가 있습니다. 1세대, 2세대, 3세대.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언저리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은 디스토피아(Dystopia)입니다.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Utopia)의 반댓말입니다. 유토피아가 모두에게 살기 좋은 꿈 같은 낙원이라면, 디스토피아는 살기 힘든 그런 공간이 되겠지요.
연극은 시작하자마자 모든 배우들이 나와서 격렬하게 운동을 합니다. 태권도를 하고 레슬링을 하고 스키도 탑니다. 지치지 않고 운동하는 이들은 운동권을 은유합니다.디스토피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혁명을 꿈꿉니다.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며 공을 열정적으로 치는 1세대, 이들은 이윽고 헐떡입니다[각주:1]. 그리고 탁구를 치는 2세대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1세대는 끊임없이 라켓을 휘두르며 혁명을 부르짖습니다.
탁구를 치는 2세대는 1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공을 칩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3세대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언저리.
언저리
연극 가장 처음을 열어젖히는 것은 언저리입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는 언저리. 언저리는 부모에게 선택받지 못한 존재입니다. 자신은 수많은 거절을 겪었으며, 덕분에 성숙한 어린이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을 거두어 주면 집안 대소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공부를 핑계로 빠지지 않겠다고 합니다. 또한, 테니스, 탁구 라켓, 아니 골프 라켓이라도 매일 정성스럽게 닦아주겠다고 공약합니다.
그러나 2세대 아이들이 등장하는 곳에서도, 3세대 아이들이 등장하는 곳에서도 언저리는 선택받지 못하고 언저리를 떠돌게 됩니다. 이윽고 날 때부터 고추털이 있고, 가슴이 자라지 않고 생리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등장하고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언저리들은 넘쳐나고 언저리들은 언저리들이 있던 공간으로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언저리들은 되묻습니다.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요?' 하지만, 이들을 불러온 1, 2세대 누구도 그들이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1, 2세대가 사라진 후 언저리들은 새로운 부모를 찾지만, 거기서도 거절을 받고 돌아옵니다. 거절을 배우고 자란 언저리들과 남은 3세대들은 전망이 없습니다. 이름하여 전망상실의 디스토피아입니다.
혁명
연극이 시작하면서 1세대와 2세대는 열심히 테니스와 탁구를 칩니다. 이 운동은 다음 세대가 등장하게 되는 행위를 은유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혁명을 위해 하는 운동을 은유하기도 합니다. 혁명을 위한 운동에서 이들은 끊임없이 라켓을 휘두르지만, 무엇을 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죠.
공이 보이냐는 물음에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치고 있는데, 공이 없을리가 없다.'는 1세대, 그리고 이어진 2세대의 탁구에서 공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나라고 공이 보이겠냐, 닥치고 쳐라'라는 말은 1세대와 2세대의 혁명이 모두 좌절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혁명의 좌절, 아니 혁명 대상의 실종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러한 현상은 아랫세대를 향한 폭력으로 일그러집니다. 흔히 얘기하는 '꼰대질'로 나타나는데요. 다리를 떤다고 탁구 라켓으로 뺨을 맞은 밤. 동네 전봇대에 기대어 우유를 소주처럼 벌컥벌컥 마시며 휘파람을 불었다는 표현은 다음 세대가 이전 세대에게 엄청난 폭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리 떨지 마라, 문지방 밟지 마라, 밤에 휘파람 불지 마라, 밥먹고 눕지 마라...라는 금언이 다음 세대에겐 절대적인 테제로 작용합니다. 이렇게 2세대에서 3세대로 끊임없이 꼰대질은 폭력적으로 재생산됩니다. 이 장면은 1, 2, 3세대 모두 모인 식사자리에서 드러나는데요. 이 장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지진'입니다.
땅이 울리고 1, 2세대는 이것이 '혁명'이라며 책을 짊어지고 나갑니다. 3세대는 이것이 지진이라고 땅이 울리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냐 묻지만, 어른들의 일에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며 1, 2세대는 혁명을 위해 집을 나섭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앞선 세대가 사라지고 아이들이 더는 태어나지 않으며, 거절을 배워온 언저리들이 혼재된 공간은 그야말로 '디스토피아'입니다. 이 디스토피아에서 남은 세대들은 천천히 책을 읽습니다. 다리는 떨지 말아야 하고, 문지방도 밟아선 안되고, 밤에 휘파람 불면 안 된다는 내용의 책을 말입니다.
사회를 움직일 혁명도, 이를 위한 에너지도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다음 세대를 향한 폭력적인 꼰대질만 남은 사회. <디스 디스토피아>는 절묘하게 사회의 단면을 비틀어 보여줍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 은유와 상징이 많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 관객들이 많이 힘들어했던 연극이었습니다. 110분이라는 긴 상연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두서 없이 던져서 보는 내내 계속 고민하게 했던 연극이네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를 가벼운 느낌으로 풀어 내는 게 인상 깊었습니다.
연극이 어려워지면서 글도 같이 꼬인 느낌이지만, 대략적인 느낌을 전할 수 있길 바라면서, 지금까지 연극 <디스 디스토피아> 후기의 레이니아였습니다.:) 사진이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위 <디스 디스토피아>를 소개하면서 컬쳐버스로부터 연극 티켓을 제공 받았음"
"위 <디스 디스토피아>를 소개하면서 컬쳐버스로부터 연극 티켓을 제공 받았음"
· 관련 포스트 및 링크
- 이게 무엇을 은유하는지는 아시겠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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