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 본능적 자유에 대한 갈망


연극을 보는 제 주관적인 해석연극의 내용포함되어 있습니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김정 연출, 박성연, 강애심, 서경화, 이봉련, 황순미, 최아령, 이지혜, 전지혜 출연, 2015.


  레이니아입니다. 오랜만에 연극을 초대받아 다녀왔습니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라는 연극인데요. 요새는 연극을 보러 가는 횟수를 많이 줄이고 다른 문화생활을 즐기다 보니 오랜만에 가는 대학로가 많이 신선하더라고요.

  극단 물리에서 상연 중인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원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습니다만, 원작을 딱히 찾아보고 가진 않았는데요. 연극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간단히 느낌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억압, 학습된 무력감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에 등장하는 인물은 8년상을 치르는 중입니다. 첫 장면에서 베르나르다는 남편을 여읜 상태로,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단절된 8년상을 치를 것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8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딸들은 8년의 세월이 지나며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잃고 하루하루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정상적일 정도의 언행을 보입니다. 그나마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보이는 인물이 막내딸 아델라입니다. 이들에게 8년은 도대체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아마 무력감을 학습하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집은 하나의 묘지와 같은 공간이었을 테지요.

  집 안의 안주인인 베르나르다는 지나치게 억압적인 인물입니다. 그녀는 남존여비적인 가치관을 따르고 있으며, 이 가치관이 자신 가문의 고결함을 상징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녀인 폰치아의 독백으로 미루어 베르나르다의 남편은 하녀 치마나 들춰보는 방탕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한편으론 그래서 자신을 반면교사 삼아 딸을 억압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럼에도 베르나르다는 장녀인 앙구스티아스의 결혼을 앞두고 남편이 다가오기 전까진 남편의 일을 궁금해하지 말고, 사랑을 갈구하지도 말라고 합니다. 8년상을 치렀던 것처럼 오로지 침묵할 권리만 있다고 하죠. 그녀의 ‘보호’로 지칭되는 강박적인 억압은 딸들의 자유의지를 모두 없애버립니다. 그래서 딸들은 밖을 꿈꾸지 못하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게 되죠.

  그녀들에게 성혼은 죽음과 같은 무덤을 탈출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자유의지 없이 존재했던 지금까지를 죽음이라 한다면, 결혼을 통해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은 비로소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과 같은 의미인데요.

  그리고 무미건조한 8년상이 끝나가며, 드디어 큰 딸 앙구스티아스와 로마노의 청혼이 이뤄집니다. 이 사건으로 고요하던 집이 조금씩 변화하게 되는데요. 딸들이 그동안 닿을 수 없었던 욕망에 눈뜨며 사건은 점차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흔들게 합니다.


본능의 자유와 억압 사이에서

  스물 다섯의 번듯한 청년 로마노의 청혼은 딸들의 가슴에 욕망의 불씨를 지핍니다. 이 욕망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섯 딸이 모두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 남편 사이에서 나온 장녀 앙구스티아스는 자신의 차례를 빼앗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합니다. 다른 딸과 자신이 다르다는 걸 알고 시기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로마노의 흔들림이 그녀에게 상처로 다가옵니다.


  둘째인 막달레나는 아버지 장례식에서 유일하게 눈물을 보인 딸입니다. 앙구스티아스와 유달리 대립하는 것 같으며, 어머니인 베르나르다에게 가장 순종적인 딸인데요. 자신이 욕망을 성취할 수 없음을 알고 주어진 현실에 체념하는 인물입니다. 아멜리아는 겁많은 인물로 그려지는데요. 체념까진 아니지만, 주어진 환경에 가장 순종적으로 사는 인물입니다.

  넷째인 마르티리오는 등이 굽은 병자입니다. 신체적 외상으로 자신은 무슨 수를 써도 무덤 같은 이곳에서 탈출할 수 없음을 알죠. 하지만 그녀 역시 욕망에 솔직한 인물로 튀어나가려는 막내를 주저앉히려는 데 모종의 이유가 있다는 게 드러납니다.


  막내인 아델라는 욕망에 솔직한 인물입니다. 가장 어리고 여성으로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자유를 꿈꾸고 있으며, 인간의 본성에 가장 솔직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인물이 긍정적인 인물일까요?


  하녀인 폰치아는 딸들을 어르고 달래기도, 베르나르다의 명령을 집행하기도 합니다. 베르나르다를 한편으로 증오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성향 또한 베르나르다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녀 나름대로 곪아가는 상처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그것이 옳은 방법인가는 쉬이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신병자인 할머니 마리아가 있습니다. 마르티리오와 더불어 공식적으로 극 중에서 병자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전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우리의 상식과 같으며,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에서 가장 정상적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인물로 낙인찍힌 인물이며, 그녀의 언행은 주목받지 못합니다. 관객을 제외하고 말이죠.


  실제 인물로 등장하지 않는 로마노, 본능적인 사랑과 자유의 목마름을 벗어나고픈 막내 아델라는 적극적으로 로마노를 유혹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베르나르다의 억압에 대한 반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미에 그녀는 베르나르다와 대척점에 섭니다. 그러나 이 반동은 실패하고, 로마노가 죽었다는 거짓말에 절망한 그녀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베르나르다. 이윽고 그녀는 자신의 딸이 처녀로 죽었으며, 누구보다 고결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주문을 외우듯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막내인 아델라를 위해 기도하며 연극은 막을 내립니다. 이렇게 죽음으로 시작한 연극은 다시 죽음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연극을 보면서 지금 우리 주변의 환경과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 굉장히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어디를 가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억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억압에 익숙해진 우리는 학습화된 무력감을 보이는 건 아닐까요? 본능적인 자유를 갈구하는 목마름을 잊어버린 채 말입니다.

  훌륭한 원작을 바탕으로 호연과 더불어 잘 짜인 연극이었습니다. 좋은 공연인데 단 2주만 상연하는 게 아쉽네요. 약속된 글이 많아 조금 뒤늦게 감상을 남깁니다만, 볼만한 연극이었습니다. 간단히 정리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레이니아였습니다.:)






"위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추천하면서 컬쳐버스로부터 연극 티켓을 제공 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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