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호텔아이리스> - 나의 결핍은 무엇으로 채우나?
글 작성자: 레이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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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제 주관적인 해석과 책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텔 아이리스
오가와 요코 지음, 이레, 2007
오가와 요코
오가와 요코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역시 후에 기회가 닿으면 다뤄보도록 하겠으나, 아무튼 이 <호텔 아이리스>에 대한 글을 쓰면서 많이 언급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전작인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다.
그 이유는, 이 두 작품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 극명하게(도저히 같은 사람이 썼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르기 때문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줄거리까지는 쓰지 않겠으나, 어쨌든 매우 사려깊고 따뜻한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호텔 아이리스>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럼, 도대체 얼마나 상반된 이야기이길래? 이야기를 직접 살펴보도록 하자.
호텔 아이리스
끈은 내 온몸의 살집을 파고들고, 파인 곳을 옭죄었다. 남자는 능란하게 끈을 다뤘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작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완벽한 흐름 속에 있었다. 모든 손가락이 각각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면서 내게 마법을 걸고 있는 듯했다.
- 책 본문 중, 71p.
개인적으로 수위가 낮은(?) 부분을 선정하느라 고민했다. 드러난 부분은 소녀와 번역가가 관계를 갖는 장면의 묘사중 일부이다. 이 부분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이들의 관계는 우선 나이 차이도 많이 나거니와(아마도 롤리타, 혹은 그 이상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 또한 정상적이지 못한, 일그러진 관계다.
'둘이 좋으면 된 것 아니느냐..'라고 하면 그다지 할말은 없지만, 저것은 개중에 상당히 약한 표현이며 본문을 읽다보면 기분이 나빠질 정도로, 더이상 Taste. 취향이라고 부르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단계까지 표현을 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박사가 사랑한 수식>과 많은 비교가 되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시간이 지나며 나름의 장애를 극복하고 어떠한 관계가 이루어졌는지를 조금은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준다면, <호텔 아이리스>는 거칠고 다시 또 거칠다.
결핍된 다른 세계
더불어 소녀의 어머니는 속물근성에 찌들은 인간성 결핍인 억척스런 인물로 등장하는데, 소녀는 정상적인 교육도 받지 못하며 이러한 어머니 밑에서 억압적인 도구로써 존재한다. 번역가의 조카 역시 혀가 없는 장애가 있는 것이 처음부터 등장한다.
부차적인 인물 역시 문제가 있다. 호텔일은 돕는 아주머니는 도벽을 가지고 있고 짧게 언급되는 매춘부는 그 직업적 문제가 있으며 맹인은 신체적 장애가 있다.
이러한 뒤틀어진 인물들이 등장하는 현실은 우리가 아는 현실이라고 하기엔 많이 낯설다. 관광객이 찾는 고성, 그리고 아이리스라는 호텔명과 책에 등장하는 많은 부분은 지역이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그저 외딴 시골이라고만 나와있을 뿐.
이러한 부분을 보면서 나는 자연스레 브레히트의 소외효과를 떠올렸다. 이 이야기도 다른 연극에서 수차례 한 이야기지만, 일부러 현실을 모호하게 제시함으로써 독자 자신의 일이 아니라 생각하지만 모든 내용이 끝나고 돌이켜 보면, 결국 현실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효과가 이 소외효과이다.
이들의 이 괴의하고 뒤틀어진 관계를 보면서 이런일은 없으리라 싶지만, 사실 우리주변에서 실제로도 있어도 전혀 이상치 않으며, 또한 있는 일일 것이다.
이들은 사랑일까?
이들의 관계는 사랑이라기 보다는 각자의 기억에 메여, 부족한 부분을 파괴적인 것으로 채우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 같다. 덧붙여 엄밀히 말하면, 그 파괴적인 것은 이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닌 말그대로 '파괴'시키는 것이다.
결국 이들의 관계는 파괴되어버리고 마는데, 이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들은 이러한 것을 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가 처음 이러한 인위적 고통을 느끼며 쾌감을 느낀다고 진술하며 일탈의 기쁨을 누렸다면, 번역가 역시 최후에 비슷한 기쁨을 누리지 않았을까?
책을 덮으며...
확실히 소재 자체가 자극적인 만큼 표현 수위도 높고 거칠다. 그러나 이를 상쇄할만큼 심오한 내용이 들어있다든지 하는 부분은 거의 눈에 띠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혹자가 이를 보고 '문학성을 가져보고자 기웃거리는 야설'이라고 깎아내려도 크게 반박할 수 없을 것 같다.
개인적인 취향에도 별로 맞진 않았지만,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맘에 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나 상반되어 등장한 <호텔 아이리스>에서 보여준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 관련 포스트 및 링크
- 책, <오 자히르>
- 연극, <어멈> - 브레히트 그리고 소외
- 연극, <옥수수 밭에 누워있는 연인>을 보고왔습니다.
- 책, <33번째 남자>
- 책, <소리 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부족한 인생들이 만드는 삶의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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