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33번째 남자>
글 작성자: 레이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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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적어두었던 책의 감상을 옮겨 둡니다.
현재 하고 있는 생각과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현재 하고 있는 생각과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책을 읽는 제 주관적인 해석과 책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33번째 남자
박정석 지음, 문학사상사, 2004
박정석 지음, 문학사상사, 2004
33번째 남자
익명성이 보장된 2세계에서는 1세계에서의 나를 아는 사람이 없기에 1세계에서의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을 '연기'해도 된다. 그 순간 2세계에서의 나는 본래의 나와 같지만 다른 새로운 '나'가 되는 것이다. 각기 다른 페르소나를 지니게 되는 '나'는 그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는 현재 우리에게도 통용되는 문제일 것이다. 각 세계를 굳건히 나누는 것이 해결책일까. 아니면 융화하는 것이 해결책일 것인가?
좀 더 원초적으로 들어간다면 '나'의 본질과 보여지는 페르소나의 간극 역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정답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2004년의 글, 아직 PC통신이 살아있던 시절이었지만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수준에 나온 책이다. 이책은 유독 기억에 남는게 언젠가 사무실 책장 받침대로 쓰던걸 책장을 내다 버리면서 발견한 책이었다. 받침대로 쓰던 눌린 책도 버리려고 옆에 세워뒀는데 점심먹고 나서 시간좀 떼운다고 뒤적거리던걸 점심시간 내내 읽고 따로 빼놨다가 결국 하루 종일 읽어버린 책.
책의 재미는 두번째고 주인공이 고민하는 것을 나도 진지하게 고민해보았기 때문에 이 책은 호소력을 갖지 않았는가 생각했다. 주인공은 온라인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이들 중 일부를 오프라인에서 만난다. 그리고 이들과는 결국 좋지 않게 끝난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 이들을 온라인에서 보면서 보는 나만의 이미지를 오프라인에서도 덧 씌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을 깨닫는 것.
과연 이것이 비단 그 때만의 이야기일까?
아니다. 이 문제는 아직도 우리곁에 살아숨쉬고 있고 누구는 필경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괴리.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 당시의 생각과 거의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리고 글을 보니 그 '생각'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잠시 이야기를 해보자.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에서 사용하는 가면에서 파생된 말이다. 사전적 의미는 '타인에게 비치는 자신의 외적 성격'이다. 정의자체도 어렵게 되어있진 않지만, 결국 남에게 보여주는 자신의 성격이라는 것이다. 여기엔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모두 포함된다.
융(Carl Gustav Jung)은 인간은 천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어 그것을 번갈아 쓴다고 하였다. 즉, 상황에 따라서 드러내는 성격이 각기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들도 쉽게 느낄 수 있는게, 가족(혹은 나와 편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상황과 처음보거나 덜친한, 어색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우리의 성격은 어떻게 바뀌는가? 또, 특별한 모임에서 소위 '컨셉'을 잡는다고 하는 것도 들 수 있겠다.
컨셉을 잡는 다는 것은 특정한 페르소나를 보여줄 것이고 앞으로 그 페르소나를 그 모임에서 사용하겠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사람들 있지 않은가? 모임마다 드러나는 성격이 제각각이라서 도통 성격을 종잡을 수 가 없는 사람들. (사실 필자가 조금 그렇다.)
아무튼 페르소나는 인간에게 있어서 당연히 가지고 있는 심리학적인 요인이고 이로 인해서 인간은 사회속에서 특정한 역할을 맡아 사회나 조직이 돌아갈 수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 책에서의 주인공은 페르소나를 보이는 것에 혼동을 느낀다. 그래서 온라인(1세계)과 오프라인(2세계) 사이의 룰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결론은 좋지 않게 끝나고 말았지만..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누구나 해봄직한 고민이다. 누구에게 어떠한 페르소나를 보여주어야 하는가?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고민은 페르소나를 '연기'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증세가 강화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아주 당연한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속이고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음으로써 죄의식과 해서는 안되는 것(여기서는 '거짓말, 속임수')을 어김으로써 얻는 쾌감을 동시에 체감하는 것이다. 이 상반된 느낌은 개인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냥 그것을 인정하면 된다. 이 성격도 저 성격도 다 '나'라고 인지하면 되는 것이다. 환경에 영향을 받아 성격이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다들 그렇다는 것을 인지만 하면 혼란스럽거나 하는 것은 사라지리라 생각한다.
그것을 거창하게 인격이 달라진다느니 혹은 타인을 속이는 연기고 진정한 자신은 다른 것이다.. 라는 부차적인 의미부여를 하기 때문에 이러한 혼란스러움은 더욱 커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속의 주인공은 이런 부차적 의미부여를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투영하려고 했던 점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책장은 마지막장이 도래해서 그 뒷이야기는 내가 알 수는 없지만, 뒤늦게나마 깨달았으니, 앞으로는 그녀가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2009년 봄)
현재...
책의 재미는 두번째고 주인공이 고민하는 것을 나도 진지하게 고민해보았기 때문에 이 책은 호소력을 갖지 않았는가 생각했다. 주인공은 온라인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이들 중 일부를 오프라인에서 만난다. 그리고 이들과는 결국 좋지 않게 끝난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 이들을 온라인에서 보면서 보는 나만의 이미지를 오프라인에서도 덧 씌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을 깨닫는 것.
과연 이것이 비단 그 때만의 이야기일까?
아니다. 이 문제는 아직도 우리곁에 살아숨쉬고 있고 누구는 필경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괴리.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 당시의 생각과 거의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리고 글을 보니 그 '생각'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잠시 이야기를 해보자.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에서 사용하는 가면에서 파생된 말이다. 사전적 의미는 '타인에게 비치는 자신의 외적 성격'이다. 정의자체도 어렵게 되어있진 않지만, 결국 남에게 보여주는 자신의 성격이라는 것이다. 여기엔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모두 포함된다.
융(Carl Gustav Jung)은 인간은 천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어 그것을 번갈아 쓴다고 하였다. 즉, 상황에 따라서 드러내는 성격이 각기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들도 쉽게 느낄 수 있는게, 가족(혹은 나와 편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상황과 처음보거나 덜친한, 어색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우리의 성격은 어떻게 바뀌는가? 또, 특별한 모임에서 소위 '컨셉'을 잡는다고 하는 것도 들 수 있겠다.
(누구나 가면 천개쯤은 갖고 있는 것이란다.)
아무튼 페르소나는 인간에게 있어서 당연히 가지고 있는 심리학적인 요인이고 이로 인해서 인간은 사회속에서 특정한 역할을 맡아 사회나 조직이 돌아갈 수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 책에서의 주인공은 페르소나를 보이는 것에 혼동을 느낀다. 그래서 온라인(1세계)과 오프라인(2세계) 사이의 룰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결론은 좋지 않게 끝나고 말았지만..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누구나 해봄직한 고민이다. 누구에게 어떠한 페르소나를 보여주어야 하는가?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고민은 페르소나를 '연기'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증세가 강화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아주 당연한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속이고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음으로써 죄의식과 해서는 안되는 것(여기서는 '거짓말, 속임수')을 어김으로써 얻는 쾌감을 동시에 체감하는 것이다. 이 상반된 느낌은 개인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냥 그것을 인정하면 된다. 이 성격도 저 성격도 다 '나'라고 인지하면 되는 것이다. 환경에 영향을 받아 성격이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다들 그렇다는 것을 인지만 하면 혼란스럽거나 하는 것은 사라지리라 생각한다.
그것을 거창하게 인격이 달라진다느니 혹은 타인을 속이는 연기고 진정한 자신은 다른 것이다.. 라는 부차적인 의미부여를 하기 때문에 이러한 혼란스러움은 더욱 커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속의 주인공은 이런 부차적 의미부여를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투영하려고 했던 점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책장은 마지막장이 도래해서 그 뒷이야기는 내가 알 수는 없지만, 뒤늦게나마 깨달았으니, 앞으로는 그녀가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 관련 포스트 및 링크
- 연극, <어멈> - 브레히트 그리고 소외
- 영화, <블랙스완> - 완벽함이란?
- 책, <소송> - 피할 수 없는 부조리의 현실
- 책,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책, <호텔아이리스> - 나의 결핍은 무엇으로 채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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