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피투성이 벌레들아> - 피투성이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닌.
글 작성자: 레이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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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는 제 주관적인 해석과 연극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도 추천을 받아 보러가게 된 연극입니다. 연극표도 싸게 구하게 되나 싶었는데, 친구를 통해서 무료로 보게 된 연극이지요. 다시 한번 그 친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미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말이죠..)
이번에 보게 된 연극은 ‘안녕, 피투성이 벌레들아.(이하 벌레들)’라는 조금 자극적인 제목의 연극입니다. 제목을 보았을 때부터 뭔가 이거 난해하겠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난해하더라구요. 열심히 고민을 해봤지만 해석하기 어려웠던 연극이었어요.
(선돌극장입니다.)
이번에는 혜화역에서 조금 떨어진 선돌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했습니다. 조금 소극장이더라구요. 요즘은 소극장 연극이 훨씬 더 좋습니다. 뭔가 꽉찬 느낌이 들더라구요.
(표와 프로그램 북)
(무대사진입니다.)
사실 무대에 이동 구조물들이 많이 등장해서 매 장면마다 바뀌고는 하지만, 우선 시작전에 찍을 수 있을 때 짧게 찍어보았습니다.
그러면 연극을 보고나서의 느낌을 한번 짧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올리는 지금은 너무 늦었고, 글을 쓰는 시점에서도 조금 늦은 때라 많이 정리가 되지 않았어요~)
'위를 보시오, 아래를 보시오, 옆을 보시오...' 흔하디 흔한 화장실에 적혀있는 낙서를 보고 온힘을 다해 따라하며 혼란스러워 하고 예정되어진 결말 '속았지?'를 확인하고 절규하는 남녀. 이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낙서를 읽고 스스로 악을 내어 이야기를 하다가 과거의 이야기를 헤집는다.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 유일하게 그들은 경계를 뛰어넘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저 경계의 존재는?
하지만 과거의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오면 차디찬 경계속에 들어있는 두사람. 다시 필사적으로 낙서를 좇아 탈출구를 찾는다. 정신없는 대화가 대위되며 이들이 곧 사람을 죽였으며 각기 화장실로 도망쳤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화장실에서 도망칠 곳은 과연 어디인가? 이들의 발작은 점점 심해지다가, 마침내 암전. 그리고 커다란 물소리가 들으며 막이 끝난다.
결국 도루에 성공한 이들. 사실은 그저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량에 몸을 던진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그 다음막. '안녕, 피투성이 벌레들아(이하 벌레들)'는 이처럼 단막단막을 제시하며 극이 진행된다. 상복을 입은 남자와 여자, 닭을 배달하는 남자와 여자. 이렇게 남자와 여자가 한팀으로 엮이어 같은 상황속에서 대립을 하고 연극이 진행된다.
연극의 대부분은 이들의 기괴한 연기가 대부분이다. 소리지르고 화내고 악쓰고 울부짖고, 보다보면 마음이 불쾌해질 정도로 이들의 연기는 기괴하고 광기에 차있다.
도대체 이 연극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스스로 소리지르고 상처입는 것? 울부짖고 때리고 발작하는 것? 이 것들은 연극 말미에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이들은 외계인의 무덤을 만들어주자고 하며 이름을 지어주자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을 하기 시작할 때쯤 진짜 UFO가 그들 눈 앞으로 쏟아진다...
이들은 현실을 이겨나기 위해 탈출, 도루, 살인 등을 하지만, 이 역시 결과적으로 현실에 패배를 시인하는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가?
극의 내용을 이야기 하기전에 짧게 형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이 작품은 이전에 보았던 '어멈'과 같은 서사극이다.
'벌레들'은 소외효과를 위하여 지나치게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성을 제거해버렸다. 가령, 피투성이의 옷차림이 붉은 천으로 표시된 것도 그렇고 남자가 여자를 죽이는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넥타이를 끊어버리는 것, 탈출을 위해서 화장실의 물소리가 들리는 것 등, 많은 요소의 사실성이 박탈되어있다.
이는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확실히 더 이상 이 연극이 실제로 믿어지는 경우는 없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연극에서 철저하게 관객을 소외시켰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로 인해서 연극이 더욱 난해해져 버렸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전체적인 연극이 어려워져, 관객이 연극에서 소외받는게 아니라 따라갈 수가 없게 되어버린 점은 많이 아쉬웠다. 나처럼 연극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은 연극을 보면서 저게 무슨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계속 궁금해해야 했고, 이는 실제로 설명을 들어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사실성이 박탈됨으로써 상징성이 강해진 것도 호불호가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에겐 유희적으로 다가올 상징성이 누군가에겐 스트레스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연극의 외적 부분이 상당히 상징적이고 사실성이 없다는 부분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이 등장하게 되는 폐쇄적인 구조물(상자, 칸막이, 프레임, 트럭 밑..)들은 모두 억압된 개인적, 체제적 혹은 사회적인 환경이나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이들은 절대자의 눈 아래에서 어딘가에 갇혀서 허우적대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이렇게 피를 흘릴 수 밖에 없는가? 그것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아마 어떤 억압 때문이라고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피흘리는 작중인물들은 벌레다. 본디 의미는 곤충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벌레에는 분명히 경멸적인 의미가 담겨져 사용되고 있다. 이를 생각한다면 이들은 무척이나 경멸적인 조소를 받는 위치에 처해있다고도 이해를 할 수 있겠다. 결국 이들은 내. 외적으로 핀치에 몰린 것이다.
이들이 기다리는 것이 UFO다. 상복소녀는 있고 상복소년은 없는 그 곳. 아마 그곳은 저승이라기 보다는 연옥에 가까운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사막의 연옥에서 이들은 자신들을 구원할 요소로 UFO를 간절히, 그리고 애타게 찾는다. 그리고 UFO를 만나는 순간 모래바람에 UFO는 사라져 버리고 이들이 고대하던 외계인 혹은 구원의 모습은 사라져 버린다.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이들은 절망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 보여주는 행동은 조금 의외였다. 외계인이 묻혔다며, 장사를 지내주고 그러기 위해서 이름을 지어주자고 하는 것이다. 즉, 몰리고 몰리고 몰릴 수 있는 한 최대로 몰린 이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래, 구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점이 나는 몹시도 놀라웠다. 그리고 그 때 다시 나타나는 UFO.
UFO가 물론 100% 구원이라고 보는 것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리라 믿는다. 하지만 나는 구원이라 믿었다. 이들이 피를 흘리고 고통스러워 하고 괴로워하게 만든 창조자. 즉, 작가가 이들을 미워해서 그렇게 내몰은 것이 아닌,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내 몰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누가 속을 줄 알고?"
그리고 다시 다른 낙서를 바라보며 무대는 완전히 그 끝을 맺는다. 기회가 닿아 후에 작가 및 연출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작가는 이 인물이 가장 긍정적인 변화의 기회를 잡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살아있음과 죽어있음으로 그것이 긍정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후에 시놉시스를 읽고서야 깨달았지만 가장 처음 화장실에 갇힌 소년과 소녀는 누군가를 죽이고 숨어든 것이라고 하였다. 어떻게 보면 상복소년과 같은 위치에 처해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년과 소녀가 끝까지, 맹목적으로 따라간 것에 대해 상복소년은 중간에 멈추며 이렇게 내뱉는다. "누가 속을 줄 알고?". 만약에 그 낙서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서 누군가가 누르고 있는 힘의 방향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소년과 소녀는 그 힘의 방향에 이끌려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누군가를 죽이고, 숨어들고, 변기물과 함께 탈출한다(버려진다.).
그러나 상복소년은 그렇지 않다. 중간에서 그 힘에 대해 냉소하고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이 것이야 말로 진짜 긍정적인 기회를 잡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계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 역시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리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다. 스스로는 아니라고 해도 우리 모두 어떠한 힘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으며, 어딘가 조금씩 출혈이 있을 것이다. 다만 피투성이가 되지 않았을 뿐. 결국 우리도 이리저리 휘둘리다보면 이를 피하기 위해 도루를 하던지 굴복하고 후에 버려지게 되고 말 것이다.
이 글을 쓰는데 무척 오랜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많은 부분이 내 머리속에서 정리되고 그렇지 못한 부분은 차츰 희석되어 사라졌다. 처음에 쓰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하염없이 깜빡이는 모니터의 커서만 바라보았다.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안쓰러움에 공연장을 박차고 나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구원을 얻었으리라 믿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무거운 추가 달린 것 처럼 한켠이 무거운 것은 어쩔 수 없었나보다.
덧. 이 후에는 조금 가벼운 연극을 보고자 하였으나, 그 다음에 본 연극은 조만간 글을 올리겠지만 안티 리얼리즘의 집약체나 다름없는 연극을 감상하게 되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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