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 충무로 국제 영화제 후기(3)
글 작성자: 레이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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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보니 좀 답답해지는 후기입니다. 이번에는 특히 강조를 합니다만
키미즈카 료이치는 이전에 <춤추는 대수사선>의 감독을 맡았다고 하는데, 내가 그 영화를 보지 않아서 여기에 대한 코멘트는 더이상 진행할 수가 없다. 몬테리올 영화제에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남겨진 자의 이야기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의 외적준거를 모두 걷어내고 기저에 깔린 이야기. 이 영화를 보고 우리고 생각해 봐야할 부분이라면 그것은 '가해자의 죄 때문에 그 가족이 낙인이 찍혀야 하는 것인가?'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이것은 일전에 이야기했던 <편지>와도 맞닿아 있는 주제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편지>와 다른점이 있다면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편지>의 경우엔 주인공의 형이 동생의 학비를 위해 도둑질을 벌이다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간다. 그리고 그 사실이 당장엔 드러나지 않지만 주인공이 중요한 기회를 잡을 때 나타나 꼭 발목을 붙잡게 된다.
그에 반하여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에서는 주인공의 오빠가 흉악 범죄를 저지르고 매스컴에서는 득달같이 달려들고 인터넷에서는 주위 가족의 정보, 이른바 '신상'을 터는 일이 나오는 일이 생기고 이런 정보를 가지고 권력구조가 형성되었다가 정보가 사고 팔리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는, <편지>에 비하면 훨씬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피해 사실이 드러난다.
죄는 누가 짊어져야 하는가?
일차적으로 죄는 누가 지어야 하는가? 그것은 당연히 죄를 진 당사자가 짊어져야 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그의 가족은?... 필자는 일전의 <편지>의 글에서는 죄를 질 필요는 없지만, 책임을 질 필요는 있다고 적었었다. 영화도 비슷한 맥락을 띄고 있다.
결과적으로 사회의 아무도 그녀를 지켜주지 않으며, 그녀가 다른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 계속 구르고 있는 공은 발이 닿지 않는 다는 멘트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교훈적인 내용(?)을 축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현실은 나이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조금 냉정하고 극단적이다. (연출을 의도적으로 밀고 나간 경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소녀의 성격은 조금 답답하지만, 그녀가 정상이 아니라는 상태를 고려한다면 그다지 납득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영화는 이 소녀를 '그렇게까지 몰아세울 필요가 있는가?'에 대하여 말하고 싶은 것 같다.
2008년의 일본의 상황이 지금 우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진 않다. 사건사고가 생기면 이른바 '신상'을 턴다는 일이 너무도 보편화되어 있어 뉴스에서도 '네티즌 수사대'라는 용어를 이용하고 있으며, 이 소스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너무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가해자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가해자의 범죄행위를 조장하거나 혹은 돕지 않은 이상 가해자의 주변인들도 똑같이 남겨진 사람, 그리고 배신받고 상처입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는 차마 피해자라는 말을 붙일 수 없었다. 남겨진 사람의 심정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죄 그리고 책임
이전 <편지>글에서는 조금 강경하게 주장한 면도 있지만, 아직도 그 생각에는 크게 변함이 없다. 죄는 이미 저질러 버린이상 갚을 길이 없다. 그러나 그 죄를 다른사람이 같이 지어야 하는 이른바 연좌제가 강요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죄를 지은 것은 가해자지 가해자의 주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해자의 주변인이 받는 피해는 분명히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 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일종의 책임을 나눠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감시할 책임..이라고 하기엔 너무 디스토피아 혹은 사회계약설의 분위기가 나니 '관계의 책임'이라고 부르자.
이 경우에 혈연관계와 같이 자신의 의지와 관련없이 맺어지는 관계도 있지만, 그 부분은 내가 태어난 것이 우연적이듯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아무튼, 이러한 일종의 책임을 서로 나누어 가졌기에 기존 집단에서 경계를 긋는 행동에 대해서 감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나의 생각이다.
영화에서도 굳세게 마주하고 부딫혀 나가야한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같고..
사소한 몇가지
연극의 런타임이 118분. 2시간을 꽉 메우는 시간이다. 그러나 실제 지나간 시간은 5일이 채 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조금 극의 진행이 압축적이지 못하고 늘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실제와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의 추격씬 같은 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실제감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싶다.
어디까지가 실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영화는 너무 감독의 개인적인 생각이 깊숙하게 틀어박혀있는 영화인 것 같아서 조금 불편했다. 물론 생각해볼 문제를 충분히 던져주었지만 연출과 이미지를 이용하여 한가지 생각으로 귀결되게끔 의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불편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여담이지만 남자 형사역을 맡은 사토 코이치가 자꾸 누구얼굴과 겹쳐보여서 누군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순서상으로 오히려 먼저 써야할 글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벌기위해 늦췄는데, 장고 끝에 악수라고 오히려 더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생각을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깊어지고 복잡해지는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하기가 힘들더군요.. 조금더 생각을 해보고 진전이 있다면 조금 더 손을 대는 방향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영화를 보는 제 주관적인 해석과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셨죠?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誰も守ってくれない)
키미즈카 료이치 | Japan | 2008 | 118min
키미즈카 료이치 | Japan | 2008 | 118min
키미즈카 료이치는 이전에 <춤추는 대수사선>의 감독을 맡았다고 하는데, 내가 그 영화를 보지 않아서 여기에 대한 코멘트는 더이상 진행할 수가 없다. 몬테리올 영화제에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남겨진 자의 이야기
이것은 일전에 이야기했던 <편지>와도 맞닿아 있는 주제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편지>와 다른점이 있다면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편지>의 경우엔 주인공의 형이 동생의 학비를 위해 도둑질을 벌이다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간다. 그리고 그 사실이 당장엔 드러나지 않지만 주인공이 중요한 기회를 잡을 때 나타나 꼭 발목을 붙잡게 된다.
그에 반하여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에서는 주인공의 오빠가 흉악 범죄를 저지르고 매스컴에서는 득달같이 달려들고 인터넷에서는 주위 가족의 정보, 이른바 '신상'을 터는 일이 나오는 일이 생기고 이런 정보를 가지고 권력구조가 형성되었다가 정보가 사고 팔리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는, <편지>에 비하면 훨씬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피해 사실이 드러난다.
죄는 누가 짊어져야 하는가?
결과적으로 사회의 아무도 그녀를 지켜주지 않으며, 그녀가 다른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 계속 구르고 있는 공은 발이 닿지 않는 다는 멘트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교훈적인 내용(?)을 축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현실은 나이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조금 냉정하고 극단적이다. (연출을 의도적으로 밀고 나간 경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소녀의 성격은 조금 답답하지만, 그녀가 정상이 아니라는 상태를 고려한다면 그다지 납득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영화는 이 소녀를 '그렇게까지 몰아세울 필요가 있는가?'에 대하여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일부러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간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2008년의 일본의 상황이 지금 우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진 않다. 사건사고가 생기면 이른바 '신상'을 턴다는 일이 너무도 보편화되어 있어 뉴스에서도 '네티즌 수사대'라는 용어를 이용하고 있으며, 이 소스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너무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가해자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가해자의 범죄행위를 조장하거나 혹은 돕지 않은 이상 가해자의 주변인들도 똑같이 남겨진 사람, 그리고 배신받고 상처입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녀 역시 상처투성이 가슴을 안고 있는 사람이다.)
나 스스로는 차마 피해자라는 말을 붙일 수 없었다. 남겨진 사람의 심정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죄 그리고 책임
그러나, 실제로는 가해자의 주변인이 받는 피해는 분명히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 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일종의 책임을 나눠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감시할 책임..이라고 하기엔 너무 디스토피아 혹은 사회계약설의 분위기가 나니 '관계의 책임'이라고 부르자.
이 경우에 혈연관계와 같이 자신의 의지와 관련없이 맺어지는 관계도 있지만, 그 부분은 내가 태어난 것이 우연적이듯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아무튼, 이러한 일종의 책임을 서로 나누어 가졌기에 기존 집단에서 경계를 긋는 행동에 대해서 감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나의 생각이다.
영화에서도 굳세게 마주하고 부딫혀 나가야한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같고..
사소한 몇가지
(쌓인 것들이 해소되는 장면)
어디까지가 실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영화는 너무 감독의 개인적인 생각이 깊숙하게 틀어박혀있는 영화인 것 같아서 조금 불편했다. 물론 생각해볼 문제를 충분히 던져주었지만 연출과 이미지를 이용하여 한가지 생각으로 귀결되게끔 의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불편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여담이지만 남자 형사역을 맡은 사토 코이치가 자꾸 누구얼굴과 겹쳐보여서 누군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두고보니 확실히 조금 닮은 것 같기도..)
순서상으로 오히려 먼저 써야할 글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벌기위해 늦췄는데, 장고 끝에 악수라고 오히려 더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생각을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깊어지고 복잡해지는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하기가 힘들더군요.. 조금더 생각을 해보고 진전이 있다면 조금 더 손을 대는 방향으로 진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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