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피스 고: 나는 잘 썼지만, 감히 남에게 추천은 못하겠다.
* 개인 브런치에 작성된 글입니다.
얼마 전, 옆자리 동료에게 고이고이 간직해오던(?!) 서피스 고(Surface Go)를 팔았다. 서피스 고는 2018년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와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한참을 함께하다가, 자리를 옮긴 후 방안 한 구석에 머물고, 더 나은 주인에게로 적을 옮기게 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피스 고2의 소식이 전해졌다.(나는 분명 미리 서피스 고2 소식을 전했다. 정말이다!) 실제 판매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았지만, 공개된 제원을 보면 여전히 '대체 불가능'과 '죽도 밥도 아닌' 사이 어딘가를 오가는 제품인 듯싶다.
서피스 고의 독특한 위치는 이 기기를 쓰면서도 '내가 이걸 잘 쓰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래서 서피스 고를 새 주인에게 넘기면서, 서피스 고를 어떻게 써왔는지 실제 용례를 소개해볼까 한다. 아무래도 어떻게 쓰는지 직접 보는 게 구매를 결정하기에도 가장 좋을 테니 말이다.
언제 어디서든, 초고 담당
서피스 고를 가장 많이 쓰는 건 뭐니뭐니해도 문서 작업이다. 서피스 고를 구매하고 근 반년 동안 작성하는 페이퍼의 초고는 거의 서피스 고가 담당했다고 봐도 좋다.
이메일, 아웃라이너(Outliner), 블로그 포스트, 아티클, 외부 기고용 원고, 기획안과 각종 보고서... 종류는 다양하지만, 이 당시 쓰는 글은 대개 산문 형태가 많았고, 노트 앱이나 워드 프로세서를 통해 작업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3:2 비율의 10인치 디스플레이를 갖춘 서피스 고는 전철에서도 가볍게 꺼내 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전철에서 꺼낼 수 있는 노트북의 마지노선은 12인치 전후라고 본다. 그렇기에 서피스 고는 그럭저럭 꺼내볼 수 있는 적당한 크기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타입 커버와 킥스탠드가 얇아 무릎 위에서 안정적으로 놓기 어려웠다. 어떻게든 쓰긴 하지만 쉽지는 않았고, 무릎은 빨갛게 눌렸다.
책상이 있는 곳, 이를 테면 카페 등에서는 쉽게 펼쳐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윈도우 10 특유의 답답한 전원 관리, 그리고 이에 따른 복귀 시간의 지연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래도 부담 없이 서피스 고를 꺼내 놓을 수 있는 것은 휴대성에 따른 매력이었다.
주로 쓰는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Word), 에버노트(Evernote), 다이나리스트(Dynalist), 타이포라(Typora)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원래는 에버노트로 대동단결이었는데, 서피스 고를 쓰면서 에버노트의 윈도우 버전이 이렇게나 엉망진창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워드도 이미지가 많이 들어가면 점점 무거워진다는 생각에 완벽히 초고를 쓸 때는 아웃라이너를 작성할 수 있는 다이나리스트 혹은 마크다운을 지원하는 타이포라를 주로 활용했으며, 어느 정도 정제된 글이 되면 워드로 옮겨 작업을 주로 마쳤다. 파일 시스템은 원드라이브(OneDrive)와의 연동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이를 적극 활용했다.
깔끔하게 포기한, 사진 편집
서피스 고를 쓰기 전, 휴대용 기기로 2015년형 맥북 12인치를 들고 다녔다. 그때는 맥북에 포토샵을 설치해 가벼운 사진 작업이나 이미지 편집을 해왔다. 심지어 카탈로그를 분리해 라이트룸 작업까지 시도했다.
서피스 고는 단 한 번 시도해보고 그 생각을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웠다. 서피스 고의 펜티엄 골드 4415Y가 맥북 12인치(2015) 기본형의 M-5Y31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실제 사용 경험이 크게 느껴졌다.
좀 더 현실적으로 비유하자면 포토샵 켜는 속도가 10초에서 30초 정도가 됐다고 하면 될까? 이 차이가 적지 않은 만큼 권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대용량 사진을 불러오면 버벅거림이 한층 심해져 나중엔 전체 작업 속도가 늘어지게 된다. 10인치 디스플레이에서 이미지 작업이 그리 쾌적하지도 않고.
그래서 서피스 고를 쓰고 있을 때, 사진을 써야 했다면 사진 데이터를 사무실로 보내 수정을 요청했다. 초벌 편집조차 어려워 A컷 선택이 전부다. 오히려 모바일에서 하는 게 훨씬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보여주니, 포기하자.
네? 선생님, 영상이요? 농담이시죠?
웹서핑, 엔터테인먼트 머신으로
그리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하지만, 자기 전 몇 개의 기사를 읽고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서피스 고를 사기 전 가장 아쉬웠던 게 이때다. 서피스 고를 다시 들이고 나서 이를 메꿔주리라 기대했지만, 사실 그리 완벽하게 채워주진 못했다.
디스플레이 품질이 조악한 편은 아니라 보는 게 나쁘진 않았지만, 태블릿으로 낙제점이었기 때문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그냥저냥 쓰다 보니 침대 위에서 아쉬운 대로 쓰게 됐다. 아이패드를 들인 직후부터 도로 찬밥신세가 됐지만 말이다.
이동 중에도 PC 페이지를 띄워놓고 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나중엔 '아쉽지 않으면 서피스 고가 아니지!' 하면서 썼다. 블루투스와의 연결이 빠릿빠릿하진 않고, 앞서 얘기한 것처럼 켜고 싶을 때 바로 켜는 즉각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웹 서핑은 크롬 브라우저를 쓰고 있다. 새로운 엣지, 웨일 브라우저도 물망에 올랐지만, 사무용 컴퓨터가 구글 계정으로 동기화를 주로 하는 탓에 선택했다. 아, 리디북스 PC용 프로그램을 받아서 책을 읽는다. 팟플레이어와 VLC로 영상 파일을 재생한다. 그밖에 엔터테인먼트로 활용할 게 마땅치는 않다.
고생하지 마세요... 게임
성능이 성능인지라 게임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서피스 고를 쓰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XX게임 돼요?"였다. 게임의 힘이란.
그래서 몇 번을 테스트해보고, 이런저런 제원표를 뒤져봤다. 그리고 이제야 하는 말인데, 찾지 말자. 포기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하물며 2018년부터 열심히 제원으로 줄타기를 했는데, 2020년인 지금은 애쓰지 않는 게 좋겠다.
특히 내가 쓴 보급형(4GB RAM, 64GB eMMC 저장장치)에서 eMMC가 발목을 잡는다. 제원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처리속도가 떨어지게 하는 원흉이다.
서피스 고로 게임을 하려면 최소사양을 먼저 눈여겨본 뒤 맞춰보자. 화면 자체도 크지 않아 여러모로 적절하지 않다는 말만 덧붙이겠다.
윈도우를 오롯이 돌릴 수 있는 기기 중 서피스 고의 휴대성은 독보적이다. 일부 미니 PC를 비교군으로 떠올려 볼 수 있겠으나, 화면의 쾌적함, 입력도구의 편의성을 고려하면 여전히 서피스 고가 우위에 있다.
하지만 휴대성만 놓고 보기에 묘하게 고루 아쉬운 성능은 서피스 고를 고민하게 하는 요소다. 밸런스가 잘 맞지 않는 느낌이 든달까. 서피스 고를 잘 쓰는 방법은 '내가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는지'를 잘 인지했을 때 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실은 서피스 고를 가장 잘 표현한 이야기다.
서피스 고2는 같은 폼팩터에 베젤을 줄여 화면 크기를 키우고, 성능을 좀 더 높였다. 하지만 서피스 고는 여전히 애매한 위치 어딘가에 놓여 있고, 화면이 커지며 오피스도 유료로 쓰게 됐다. 애매한 위치는 누군가에게 알맞은 기기가 될 수 있지만, 그 누군가의 범위가 그리 넓어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잘 썼지만, 누군가에게 섣불리 서피스 고를 추천하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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