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라카지' - 아름다운 새장 속 공연
연극을 보는 제 주관적인 해석과 연극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카지
이지나 연출, 정성화, 김다현, 이지훈, 남경주, 고영빈 외 출연, 2015.
레이니아입니다. 오랜만에 대극장 뮤지컬, <라카지>를 보고 온 후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작년 연극 결산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작년엔 연극을 보러 가는 문화생활을 많이 하지 못했었는데요. 새해가 밝아오고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TV나 방송 매체에서 광고하는 공연이고 푯값도 비싼 뮤지컬입니다. 오랜 고민 끝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주변 반응도 무척 좋았고 제가 좋아하는 김다현 배우도 나와서 언제고 꼭 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캐스팅 표를 보고 예매하여 다녀왔습니다.
홍보 메인에 나오는 팀은 아닙니다. 그래도 다 제 취향이니까요. 그래서 재미있게 보고 온, 라카지에 관한 감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라 카지(La Cage)
캐스팅과 배우들이 등장하는 숏컷을 보고 예매 전에 시놉시스까지 보면서 <라카지>가 무슨 내용인지 짐작한 상태로 갈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상트로페즈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은 '게이'가 등장하는 뮤지컬입니다. 정확히 배경이 '라카지오폴'이라는 게이클럽을 중심으로 펼쳐지므로 등장인물 중 다수가 남자 배우인데요. 이러한 신선함이 외려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앉은 자리 뒤에는 이제 막 학령기에 접어든 아이가 앉아있었는데 1부 때부터 지루함을 온몸으로 표출하더니 2부 때는 자리에 보이지 않더군요. 뮤지컬 안에 성인 취향의 유머나 다양한 메타포가 섞여 있으며, '성 정체성'에 관해 이해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아서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는 적절하지 못한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카지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관사 la에 새장이라는 Cage가 붙은 말입니다. 의미는 그냥 새장입니다. 게이클럽 '라카지오폴'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아름다운 새들이 모여서 쉬는 새장이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이런 장소의 의미를 겸하면서 새장은 한편으로 새를 속박하는 장치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라카지오폴의 메인 가수 '자자'인 앨빈은 그녀의 남편 조지와 함께 라카지오폴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부의 침실은 아주 화려한데요. 나중에 조지와 장미셀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앨빈은 아름다운 새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처럼 '라카지'라는 의미는 뮤지컬의 장소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의미부여가 가능한 요소입니다. 자유를 속박하는 새장이면서 동시에 화려하게 치장한 새의 거처가 될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연약한 새를 보호해주는 곳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게이와 호모포비아의 만남
뮤지컬 <라카지>는 게이 커플인 조지와 앨빈의 아들인 장미셀이 결혼하겠다는 폭탄선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장미셀이 마음에 둔 여자는 안느. 그러나 그녀는 게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극보수주의 정치인 에두아르 딩동의 딸입니다. 안느와 장미셀이 결혼하게 된다면 게이와 호모포비아가 서로 사돈이란 이름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에두아르 딩동은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미셀은 에두아르 딩동을 속이기 위해 자신의 친모를 부르고 앨빈의 존재를 숨기려고 합니다.
<라카지>에서 이러한 과정은 재미있게 흘러갑니다. 그러나 그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성애라는 이유로 장미셀을 존중하는 앨빈, 그리고 앨빈을 사랑하는 조지,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는 장미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삶을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채플린의 말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1부 클라이막스에서 보여주는 앨빈의 감정선은 배우의 역량에 따라 크게 좌지우지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라카지>의 앨빈역은 모두 훌륭한 배우를 뽑았습니다. 저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보았던 선 고운 김다현 배우의 모습이 앨빈역으로 무척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제 예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무대에 올라간 메인가수 '자자'로서, 모성애로 모든 걸 포용하는 '앨빈'으로서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멋진 무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앨빈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며, 아들 장미셀에게 너그러운 아버지인 조지. 고영빈 배우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부드러운 라카지오폴의 호스트로, 애처가로, 아버지로 제게 멋진 인상을 남겼습니다.
앨빈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긍정하고 이를 당당하게 생각합니다. 장미셀을 낳자마자 도망가버린 친모 이상으로 장미셀에게 헌신했기에, 그녀는 누구보다 당당하고 자신의 거처인 라카지를 화려하게 꾸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새장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듯 앨빈도 섬세한 인물입니다.
그녀가 사랑을 쏟아 키운 장미셀이 그녀를 숨기고 싶어한다는 걸 알았을 때, 그녀는 크게 흔들렸습니다. 이 마음이 고조되는 게 1부 클라이막스인데요. 그럼에도 그녀는 아들을 위해 기꺼이 아들의 결정을 들어줍니다. 하지만 친모의 배신 아닌 배신으로 그들의 계획은 점차 산으로 가기 시작합니다.
절대 마주칠 일이 없으리라 믿었던 게이와 호모포비아의 만남은 조금 우스꽝스럽게 막을 내립니다. 그래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결말이라 마음이 놓였습니다.
남과 조금 달라도 ‘나는 나일 뿐’인 앨빈의 말이 묘하게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다양한 볼거리와 즐거움으로 남았지만, 뮤지컬 <라카지>가 다루는 소재는 몇 가지 씁쓸한 사건을 떠올리게 하여 마음 한구석이 복잡해지기도 하였습니다.
뮤지컬의 구조도 재미있고 배우들의 역량도 뛰어나서 후회 없는 문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LG아트센터의 시설도 훌륭한 편이고요. 꽤 재미있는 공연이니만큼, 기회가 닿으신다면 즐겁게 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짧은 감상의 레이니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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