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웰다잉' - 아름다운 죽음이란 무엇일까?
연극을 보는 제 주관적인 해석과 연극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웰다잉
추민주 연출, 홍희원, 최연동, 한보라 외 출연, 2016
레이니아입니다. 수일 전, 저는 창작 뮤지컬 우수작품으로 선정된 뮤지컬 <웰다잉> 공연에 초대받았습니다. 공연에 관한 글을 요새는 잘 안 쓰고, 공연 후기를 적기보다는 그냥 혼자 보고 마는 때가 많아 이런 초대를 굉장히 오랜만에 받았습니다. 사실 돌아보면 연극 후기엔 늘 오랜만에 초대받았다는 글을 적는 것 같네요.
창작 뮤지컬은 예전에 몇 편 호되게 데인 적이 있어 고민스러웠지만, 우수작품으로 선정된 작품이고, <웰다잉>부터 창작 뮤지컬 신작 릴레이가 있다는 소식에 보러 가기로 하고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정리해보는 뮤지컬 <웰다잉>의 후기입니다.

웰다잉(Well-Dying)
웰빙(Well-Being)이라는 단어는 신조어라기보다는 익숙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이 웰빙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시작해 공감, 힐링과 같은 키워드가 뒤따라 나왔죠. 그런데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단어는 좀 신선합니다. 뮤지컬 <웰다잉>이라는 제목을 보고도 이게 어떤 철자로 되어있는지조차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웰빙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라면 웰다잉은 반대로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존엄사 혹은 안락사도 있는데요. 글을 쓰면서 조금 찾아봤더니 존엄사와 안락사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면, 웰다잉은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한다는 의미로 그 의미가 살짝 달랐습니다.
뮤지컬 <웰다잉>은 인생의 황혼을 맞은 세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들은 신대방, 구파발, 남태령으로 지하철 역이름과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데요. 지하철이라는 공간과 관련 인물은 <웰다잉>에 양념을 더하는 소재로 작용합니다.
주인공은 ‘웰다잉’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뮤지컬은 이들의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이를 방해하는 요소를 끼워 넣습니다. 신대방에게는 자수성가한 자신만큼이나 성공적으로 몸에 안착한 췌장암을, 구파발에게는 치매 초기 증상을 끼워 넣었으며, 남태령에게는 심장 수술 후유증으로 언제 심장 마비가 올지 모르는 장애를 부여했습니다.

또한, 이들의 가정환경 역시 웰다잉과는 거리가 멉니다. 더 심폐소생술을 겪고 싶지 않은 남태령, 그리고 그녀를 놓지 못하는 딸. 가난에 쫓겨 가족과 함께하기 어려운 구파발, 반대로 자수성가해 성공한 신대방은 남은 가족이 유산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들은 사는 것이 어색하고 쓸쓸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들이 원하는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동반 자살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동반 자살여행을 떠나고 좌충우돌하는 과정에서 신대방, 구파발, 남태령은 각자가 생각하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짜임새 있는 창작뮤지컬
뮤지컬 내용에 관한 이야기는 이만하고 극 구성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꽤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짜임새는 훌륭한 편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지하철 역이름이면서 동시에 지하철 기관사 등의 인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동시에 인생을 비유하는 소재로도 쓰여 세 인물과 지하철이라는 공간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개도 만족스러웠는데요. 다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신대방이 쓰러진 이후부터 좀 산만해졌습니다. 마무리 부분에서 힘이 좀 빠지는 느낌입니다. 대사도 너무 불필요하게 길거나 교조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특히 남태령과 관련된 마지막 부분은 클리셰 덩어리였습니다. 사실 신대방이 쓰러진 이후부터 대충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고, 그리고 뮤지컬은 그 예상을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남태령 부분이 특히 클리셰였다는 것이지 구파발이나 신대방 부분은 신선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런 부분이 마지막에 살짝 아쉬웠어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아름다운 죽음을 만들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아름다운 죽음이 부재한 상황을 끌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지병과 주변 환경이 이런 상황을 만드는데요. 신대방과 남태령보다 구파발의 치매라는 요소는 상대적으로 비중 있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결말에 와서야 급하게 작용한 치매는 너무 편리하게 쓰인 요소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삽입곡은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편이었습니다. 몇몇 인상 깊은 노래가 있었습니다만, 다른 뮤지컬의 경험을 비추어보았을 때 귀를 사로잡을 만큼 마음에 드는 곡은 없었습니다. 몇몇 음악이 반복적으로 쓰이긴 했지만, 주제를 살리고 호소력 있는 노래가 들리지 않아 좀 아쉬웠습니다.

반면에 출연진은 정말 괜찮았습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정말 노래가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왔다가 글을 정리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노래가 괜찮은 게 아니라 배우들이 잘해서 살려낸 것이더군요. 전 출연진 모두가 연기도, 노래도 수준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창작 뮤지컬을 포함해 비슷한 규모의 공연에서 이만큼 출연진에게 만족스러웠던 공연은 처음이네요.
저와 함께 공연을 보신 분도 비슷한 의견이었습니다. 특히 출연진의 호연은 입을 모았고요. 우수 작품으로 선정될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감과 따뜻한 내용이 인상적인 뮤지컬 <웰다잉>이었습니다. 지난 5일부터 17일까지 하는 짧은 공연이라 조금 서둘러 소개해보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관람을 권해드립니다. 올해 첫 뮤지컬을 성공적으로 본 느낌이네요. 그럼 지금까지 뮤지컬 <웰다잉> 소개의 레이니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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