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위키드> - 환상적인 뮤지컬
글 작성자: 레이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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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는 제 주관적인 해석과 연극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키드(Wicked)
조 만텔로 연출, 젬마 릭스, 수지 매더스 주연, 2012
조 만텔로 연출, 젬마 릭스, 수지 매더스 주연, 2012
저는 지난 여름휴가비를 탈탈 털어서 뮤지컬 <위키드>를 보고왔습니다. 무려 3주전에 예매해서, VIP석으로요...!
(무시무시한 가격...)
재미있게 보고와서 조금 늦게 남기는 후기입니다. 바로 시작할께요:)
매력적인 원작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입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오즈로 날아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고, 사악한 서쪽마녀가 선한 남쪽마녀인 글린다와 친구사이였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쓰여진 이야기가 <위키드>인데요. 이 <위키드>의 완성도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기인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많은 사랑을 받은 창작물인 <오즈의 마법사>를 기본 골자로 삼아 저자의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가 원작 <위키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저자의 참신한 발상과 오리지널 <오즈의 마법사>의 설정과 맞아떨어지는 안배는 작품의 완성도와 재미를 한껏 끌어올리죠. 이러한 원작의 완성도가 뮤지컬 <위키드>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대에는 더 큰 용이 막 움직입니다!)
화려한 무대효과
또한, 극장의 음향시설도 매우 괜찮은 편이었는데요. 이런데 무딘 편인데도 음향시설이 괜찮다고 느꼈으니 꽤 좋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랜만에 대극장에서 관람하는 뮤지컬은 확실히 느낌이 많이 다르더군요. 작년 이맘 때 샤롯데 씨어터에서 관람한 <지킬 앤 하이드>(링크)가 떠올랐습니다.
지난 <지킬 앤 하이드>(링크) 공연에서 대극장 뮤지컬의 장점을 살짝 적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위키드>에서도 이 장점은 통용됩니다. <지킬 앤 하이드>에 비해 여성보컬의 비중이 높은 <위키드>의 노래는 중후한 느낌은 조금 떨어졌습니다만, 더 강하게 몸을 '관통'하더군요.
(놓여있던 위키드 팝업북)
단체 군무와 합창으로 더 풍부한 음색과 감정이 노래의 전달력을 극대화시키는 점은 이런 대규모 뮤지컬에서나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주연들의 노래 실력이 무척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는 약간 자리의 영향을 받기도 했는데요. 비교적 좋은 자리에 앉게 되어 배우의 표정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었던 이유로 더 많은 것을 느껴 좀 더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말이 아니라 영어로 진행하는 뮤지컬임에도 배우들의 몸짓만으로도 내용의 이해가 어느 정도 가능했던 점[각주:1]은 이들의 표현력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매력적인 내용 그리고 자막
그런데, 이 내용을 한글로 옮기는 과정은 개인적으로 조금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물론 다른 문화권 관객이 이해하게끔 번역하는 작업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 작업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전제할게요.
번역의도가 '정확한 번역보다는 농담을 같은 위치에 맞추는 데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는 인터뷰[각주:2]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의도는 잘 적용되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수위에 대해선 살짝 이견이 있습니다. <위키드>의 자막에서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신조어를 과감하게 사용했다는 점인데요.
다른 부분은 크게 문제되진 않았지만 마법사 오즈를 '오즈느님'이라고 한 부분은 보기에 그리 좋진 않았습니다. 오즈머니나! 같은 부분은 센스있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만, 유독 '오즈느님' 하나가 마음에 걸리네요. 적당함이라는 경계는 사람마다 다르다 생각하지만 제게는 분명한 의도가 보이지 않는 불필요한 신조어는 지양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주제의식
우선 주인공인 엘파바의 속성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엘파바의 피부는 초록색이죠. 그래서 주변 사람들, 심지어 아버지에게까지 천대받고 차별받습니다. 피부색에 따른 차별은 지금도 남아있고, 과거 <위키드>가 초연될 당시에도 있었을 겁니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이런 인종차별은 꽤 사회적인 이슈였던 것도 생각해보아야겠죠.
그리고 차별 받는 존재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쉬즈 학교의 염소교수 딜라몬드 교수입니다. 그 역시 인간들과 다른 동물로서, 언어를 배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전문적인 역할을 맡지만, 타인의 차별 때문에 결국 언어를 잃게 됩니다. 동물에 대한 주제의식을 살펴볼 수도 있지만, 단순히 동물로 한정짓기엔 의미가 작은 느낌이 들어요.
인간이 상호간의 소통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단이 언어입니다. 그런의미에서 본다면 딜라몬드 교수가 언어를 잃어(=강탈)버렸다는 것은 소통할 수 없는 차원으로 강등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위의 엘파바의 사례와 종합해본다면 다른 존재를 구별짓고 차별하지 말자는 보편적인 주제로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각주:3]
엘파바는 처음에 오즈를 찾아가 마법을 배우고 자신의 피부를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돌릴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갖습니다. 이른바 주류세계의 편입을 희망하는데요. 그러나 이것들이 모두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은 주류세계가 아닌 비주류지만, 자신이 믿는 길을 가겠다고 선언합니다.(Defying Gravity)
이 과정이 결국 <위키드>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의 의미를 찾고 주어진 길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 이게 핵심이 아닐까요?
<오즈의 마법사>라는 원작에 기대고 있는 뮤지컬이니만큼 엘파바의 1차적 퇴장은 당연한 부분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개인의 희생으로 모든 일이 종결되는 것 같지만 희망의 끈이 글린다에게 이어지고 꽃필 것임을 암시하는 점. 그리고 엘파바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결말은 모두에게 훈훈한 결말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추천합니다.
적어도, 공연을 보는 순간은 돈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재미있었어요.
(또 보고싶을 거에요...)
· 관련 포스트 및 링크
-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 몸을 관통하는 카타르시스
- 연극, 어떤 연극을 봐야 실패하지 않을까?
- 뮤지컬, <화랑> - 너무나 영리한 연극
- 뮤지컬, <스페셜레터> - 우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시다.
- 뮤지컬, <마리아마리아> - 용두사미의 구성
- 연극, 어떤 연극을 봐야 실패하지 않을까?
- 뮤지컬, <화랑> - 너무나 영리한 연극
- 뮤지컬, <스페셜레터> - 우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시다.
- 뮤지컬, <마리아마리아> - 용두사미의 구성
- 물론 한글 자막은 제공되었습니다. [본문으로]
- 김소연, <'연기'하는 자막…'마녀 선풍'의 숨은 공신>, 한국일보, 2012. 6. 19, 25면. [본문으로]
- 최상진, <[최기자의 커튼콜] '위키드' 젬마 릭스, 리처드 블레이크 "한국 관객이요? 모두 대박">, 유니온프레스, 2012. 9. 4 - http://t.co/WRHuzdlZ 를 살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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