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로봇을 이겨라' - 인간을 낯설게 보는 과정
연극을 보는 제 주관적인 해석과 연극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로봇을 이겨라
윤서비 연출, 최영열, 이종민, 홍승비, 염문경, 김수현 외 출연(공동창작), 2014
레이니아입니다. 무척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를 하고 왔어요. 대학로에서 상연 중인 연극을 보고 왔는데요. 요새는 마땅히 선택할 연극이 없어서 가끔 초대를 받거나 할 때나 움직이지 먼저 선뜻 손이 가는 연극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한편으론, 제가 좋아할 법한 연극은 연극계(!?)에 늘 관심을 두고 있어야 하다 보니 더더욱 보기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오랜만에 소개하는 연극인 '로봇을 이겨라!'입니다. 사진 자료도 많지 않아 간단히 적고 후에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실험극
요새는 연극 초대도 잘 응하지 않습니다. 대학로에 그저 그런 소동극풍의 연극이 범람하여 초대받아 연극을 보고 나서 쓸 말이 없는 연극이 많기 때문인데요. 그래도 초대에 웬만하면 응하는 곳이 오늘 저를 초대해준 컬쳐버스입니다. 신선한 시각의 연극을 많이 소개하여 즐거운 경험을 하게 하는데요.
오늘 제가 소개하는 연극, <로봇을 이겨라!> 역시 이런 범주에 들어가는 연극입니다. 진정성을 과학적으로 탐구했다는 <로봇을 이겨라!>는 전형적인 실험극인데요. 대학로 스타시티 SM홀에서 단 열흘간만 상연하는 연극입니다.
조금 일찍 들어갈 수 있었는데요. 들어가서 배우들과 잡담(!?)을 나눌 수도 있었습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배우들과 가까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실험극은 실험극. 긴장 바짝 하고 연극을 감상했습니다.
(연기력 평가로봇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연극은 구성부터 다른 연극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한 연출가가 모든 연극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연극에 배우로도 참여한 사람들이 공동연출로 장면을 만들고 이 장면을 조각조각 기워낸 연극입니다. 따라서 연극에 어떤 서사가 있다기보다는 몇몇 코너가 모인 연극이라고 보는 게 좋은데요. 장면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로봇과 인간
불안하다 연작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기도 한 <로봇을 이겨라!>는 다양한 로봇을 실제로 등장시켜 이 로봇과 인간(등장하는 배우이자 동시에 로봇)을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매봇이니 진정이 따위의 독특한 이름을 가진 로봇들이 무대에 오르며, 나름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미래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포스트 액터(Post-Actor)가 등장하여, 기존에 활동하던 배우를 대체할 수 있는 완벽한 배우가 등장한다고 합니다. 고통을 느끼지 않거나 유전자를 조작하여 흉측한 모습에서부터 특정한 모습으로 직접 변할 수 있다는 주장이 연극 내내 등장합니다.—리얼리즘도 이런 리얼리즘이 없군요!—
연기를 관측할 수 있는 데이터로 점수를 내려주는 로봇, 대신 맞아주는 로봇 등 약간은 엉성해 보이지만 분명히 작동하는 로봇이 등장합니다. 여기에 토막 상식처럼 등장하는 미래 예측이나 연기에 대한 이야기는 이들의 주장에 힘을 보탭니다.
(신체 수치를 기록하여 진정성과 연기를 판별합니다.)
진정성을 수치로 객관화할 수 있다는 주장, 무대 위에는 배우만이 올라와야 한다는 일종의 엄숙주의적인 주장부터 인간을 조각조각 해체하는 코너까지 다양한 주장이 얽히고설킵니다.
진정성
저는 여기서 ‘진정성’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했습니다. 로봇과 인간을 나누는 결정적인 무엇. 그것은 바로 진정성이라 할 수 있는데요. <로봇을 이겨라!>은 이 진정성을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이 진정성이라는 걸 수용자가 판단할 수 있는가? 를 주제로 다양한 실험을 하기도 하고요.
또한 이 진정성이라는 것도 객관화된 수치로 표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다시 말해, 수치에 맞는 연기를 하면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앞서 얘기한 인간을 해체하는 코너. 배우 자신을 오롯이 알려주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본을 떠서 직접 나눠주기도 하며, 자신의 키를 하나의 단위로 삼아 현실 세계를 분석하기도 합니다.
배우들의 공간인 ‘연극’과 ‘무대’를 한정하고 있으나 이 이야기는 결국 현실 세계에 확장하여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먼 미래,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과 로봇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이야기 말이죠.
(진정성을 마실 수 있는 기회(!?)입니다.)
연극에서는 다양한 연극이론과 함께 진정성을 부르짖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점은 허구의 사건이 일어나는 공간에서 진정성을 부르짖는 지점에서 관객은 진정성을 낯설게 보게 됩니다. 사람마다 가진 진정성의 모양이 다르다고 부르짖으면서도 한편으로 진정성을 점수라는 모양으로 재단해버리는 모습. 허구를 연기하는 배우의 연기에서 진정성을 찾아야 하는 것. 배우의 실제 이야기면서도 연극 내부에 들어가며 허구의 사건으로 변하는 과정.
이러한 아이러니는 관객으로 하여금 진정성이란 무엇이며, 나아가 진정성을 가진 인간 존재를 낯설게 보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는 연극에서 의도한 바인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바탕으로 진보적인 담론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연극이 여러 장면을 오가는 구성이다 보니 시간에 쫓기며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에 쫓긴다는 의도를 살린 코너도 있었지만, 애초 2시간 20분 예정인 연극은 2시간 40분이 넘어서야 끝이 났는데요. 그만큼 연극이 매끄럽게 흘러가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합니다.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기를 활용하는 연극인데, 이 기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소음이 들리기도 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고요. 다양한 로봇이 등장하는 과정이나 동영상을 번갈아가면서 트는 일련의 동작이 조금씩 매끄럽지 못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실험극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바짝 긴장하며 갔지만, 다양한 코너와 멀티미디어, 그리고 배우들의 온몸을 불사르는 연기 덕분에 재미있게 보고 왔어요. 실험극을 보고 나서 복잡한 생각과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세 배는 복잡해진 생각은 차치하고, 근래 본 실험극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보고 온 공연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밖에 공연하지 못함이 아쉽네요. 연극을 보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있으면 좀 더 유익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즐거이 보고 왔습니다. 쉽지 않은 연극이지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연극이었어요. 그럼 연극, <로봇을 이겨라!>의 장황한 후기, 레이니아였습니다.:)
컬쳐버스로부터 연극 표를 제공 받았음"
'Culture > 연극(Dram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뮤지컬, 셜록 홈즈 - 즐거운 뮤지컬 (0) | 2014.12.21 |
---|---|
연극, '맨 프럼 어스' - 구성의 문제인가, 연기의 문제인가 (9) | 2014.11.28 |
연극, '사물의 안타까움성' - 찡그리며 웃다. (2) | 2014.07.21 |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 맛깔나는 연극. (6) | 2014.04.25 |
2013년 연극 총 결산 - (2) So so & Bad. (0) | 2014.02.02 |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뮤지컬, 셜록 홈즈 - 즐거운 뮤지컬
뮤지컬, 셜록 홈즈 - 즐거운 뮤지컬
2014.12.21 -
연극, '맨 프럼 어스' - 구성의 문제인가, 연기의 문제인가
연극, '맨 프럼 어스' - 구성의 문제인가, 연기의 문제인가
2014.11.28 -
연극, '사물의 안타까움성' - 찡그리며 웃다.
연극, '사물의 안타까움성' - 찡그리며 웃다.
2014.07.21 -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 맛깔나는 연극.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 맛깔나는 연극.
2014.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