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프랑켄슈타인 - 창작 뮤지컬의 편견을 보기좋게 깨버리다
연극을 보는 제 주관적인 해석과 연극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유준상, 박건형, 전동석, 박은태, 한지상, 최우혁 외 출연, 2016.
레이니아입니다. 예전부터 지인의 추천에 힘입어 꼭 보고 싶던 뮤지컬이 있습니다. 바로 ‘프랑켄슈타인’인데요. 초연을 보고 극찬을 하셔서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하다가 결국 이번 공연 끝에 아슬아슬하게 보고 왔습니다. 마지막 날, 마지막 전 공연(150회차)이더라고요.
몇몇 배우는 막공이라 분위기가 한층 후끈했던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후기를 정리해봤습니다. 결론부터 미리 말씀드리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공연이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의 구성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창작 뮤지컬입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각색해 만든 뮤지컬인데요. 원작은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메리 셸리의 고딕 소설입니다. 아마 다른 작품처럼 대략적인 내용만 알고 줄거리는 잘 모르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저처럼요. 원작 자체는 그다지 길지 않은데요.
원작의 큰 틀은 그대로 따르지만, 각색은 많이 이뤄져 세부적인 내용은 거의 다릅니다. 1막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가, 2막은 크리처의 이야기가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1막과 2막의 인물이 일부 1인 2역을 맡습니다. 이걸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대부분 배역이 극과 극으로 달라지곤 해서요.
1막에서는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친구로 앙리 뒤프레를 만나 크리처를 만드는 과정까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전쟁을 기회로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이를 우정으로 지원하는 앙리 뒤프레의 모습이 주가 되는데요.
뛰어난 실력과 냉철한 이성을 갖춘 빅터는 마녀의 아이라는 소문과 함께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받습니다. 그렇게 불리게 된 원인과 강한 전기자극을 이겨낼 신선한 시체의 머리(뇌)를 구하게 되는 과정이 1막에서 그려졌는데요. 특히 1막 첫 장면이 마지막 장면에 다시 나오는 연출은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2막에서는 크리처가 겪은 일을 중심으로 빅터에게 가하는 복수의 과정이 그려집니다. 2막에서 크리처가 겪는 고통은 1막의 인물들이 다른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연출은 연출가의 의도라고 합니다. 크리처가 겪는 일은 그에게 악몽 같은 일이었고, 악몽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가 알았던 사람이 등장해야 한다는 생각했기 때문이라는데요. 타당성 있는 설명이었습니다.
많은 세부 설정이 바뀌었지만, 극 구성 자체는 흥미로웠습니다. 스릴러 느낌이 좀 났는데, 이는 우리나라 관객에게 효과적인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약간 지킬 앤 하이드가 떠오르더군요. 극 구성에 빈틈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만,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면 눈감아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굳이 짚자면, 1막과 2막이 비교된다는 점인데요. 개인적으로는 1막에 좀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배역의 비중이 좀 고르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줄리아 배역이 그렇습니다. 1막에서도 2막에서도 비중 있는 인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계속 주변만 겉돌고 말아서 아쉬웠습니다.
인상 깊은 넘버, 그리고 연기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한층 더 인상 깊게 만들어주는 것은 삽입곡입니다. '이런 노래 불러도 목이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높은 음역이 필요한 삽입곡의 향연이었는데요. 실제로 조금 찾아봤더니 삽입곡의 난이도가 상당한 편이라고 하는데요. 듣기에는 참 좋았습니다.
전체적으로 극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는 노래가 많았습니다. 다시 한 번 뮤지컬의 주인공은 노래라는 걸 깨달았는데요. 특히 이번에 '살인자'라는 곡은 주연 배우가 아닌 앙상블이 매력적인 곡이라 인상 깊었습니다. 공연 보고 나오면서 '살인자~' 흥얼거리긴 좀 민망했지만요. 아직 OST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어요. 빨리 나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배우들 칭찬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전체적으로 고음역의 노래를 소화해낸 배우들의 노래 실력은 일단 대단하고요. 연기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박건형, 최우혁이 나오는 회차를 봤는데요. 배우마다 배역의 성격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합니다.
제 기준으로 정리해보자면 빅터는 매우 이지적인 느낌이 강했고, 크리처는 빅터를 정말 원수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뮤지컬이 빅터와 크리처 사이를 약간 애증의 관계로, 커플처럼 엮는 느낌이 들게끔 연출한 덕분인지 각 배역의 (서로를 향한) 성향이 두드러졌던 것 같아요. 특히 크리처가 그렇게 느껴 졌습니다.
1막과 2막에서 격차가 큰 연기를 보여준 것도 칭찬할 만한 부분입니다. 무심코 보다가 같은 배역인지 모를 정도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빅터가 2막에선 깐족거리는 모습을 보면 같은 배역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 격차가 당황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게 재미있는 요소가 되겠고요.
연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빅터의 약혼자 역인 줄리아는 생각만큼 비중 있는 역할이 아니라서 매력을 전부 보여주기엔 좀 부족해서 아쉬웠습니다.
인간이 창조한 생명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스릴러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며 원작과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제의식이 약간 흐려졌는데요. 크리처가 태어남으로써 얻는 혼란 등을 좀 더 고민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본디 원작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의 좌절, 그리고 통제하지 못하는 과학기술에의 공포 등이 묻어나오는 소재였습니다. 원작의 많은 부분이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이런 주제의식은 옅어졌지만, 극 중에서 크리처가 내뱉는 대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크리처는 막 태어나자마자 광란 상태에 빠집니다. 어떤 이유로 상대방을 공격한 것인지는 나오지 않지만, 그가 의식이란 걸 가졌을 때 그가 기억하는 것은 창조주인 빅터가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처에게는 태어나자마자 존재의 의미를 부정당한 것이죠. 탈출한 크리처는 낯선 인간과 만나자마자 격투장에 갇혀 끔찍한 생활을 해야만 했죠.
원작도 그렇고 뮤지컬에서도 크리처는 인간보다 나은 지능을 갖춘 존재로 나옵니다. 실제로 뛰어난 의학기술을 갖춘 앙리의 뇌를 온전히 갖고 있으니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적인 크리처가 의문을 갖는 것은 자신의 기원과 존재의 의미입니다. 자신이 왜 태어났어야 했는지 묻는 크리처의 모습에선 광기마저 느껴집니다.
인간이 태어난 이유를 누구도 설명해주진 않습니다. 만약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이 주사위 놀음을 했다 해도 신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크리처는 물어볼 대상이 있습니다. 그의 창조주인 빅터입니다.
자신을 왜 만들어냈는지, 자신이 왜 세계에 던져졌는지에 대해 크리처는 묻습니다. 저는 뮤지컬을 보면서 빅터가 자신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답을 하길 기대했습니다만, 뮤지컬은 여기에 집중하기보다는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더군요.
뮤지컬은 이들의 복수로 흘러가지만, 여러모로 생각해볼 게 더 있습니다. 방금 나온 세계에 던져진 존재의 의미, 그리고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과학 등이요. 주제의식으로 삼을 만한 게 많아 뮤지컬이 아닌 연극으로 각색돼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호연이면 호연, 극 구성이면 극 구성까지 놓치지 않는 뮤지컬이었습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뮤지컬에서 음악이 탄탄하게 받쳐주는 게 중요하다는 기본적인 원리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지인이 왜 추천해주셨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고요.
저는 무척 즐겁게 보고 왔습니다. 막은 내렸지만, 다음에 다시 막을 올린다면 다시 한 번 즐겁게 다녀올 의사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뮤지컬이 창작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창작 뮤지컬을 보고 불안해했던 제 편견을 훌륭하게 깨줘서 더욱 만족스러웠습니다.
올해라고 해버리기엔 조심스럽고, 적어도 올 상반기에 가장 만족스러운 극(연극, 뮤지컬 포함)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후기를 정리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레이니아였습니다.:)
* 이상에 쓰인 이미지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페이스북(링크)에서 인용하였으며,
공연 내용 소개를 위한 용도임을 밝힙니다. 저작권 문제가 발생 시 이미지를 내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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