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헤어스튜디오 궁> - 그다지 참신하지 못했던 실험극
글 작성자: 레이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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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는 제 주관적인 해석과 연극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어스튜디오 궁
김사빈 연출, 김도현, 황성윤, 박성훈, 마두현, 안창환 출연, 2012
김사빈 연출, 김도현, 황성윤, 박성훈, 마두현, 안창환 출연, 2012
레이니아입니다. 며칠..이라고 하기엔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방명록에 연극초대 관련 글이 올라왔습니다. 사실 이런 기회는 쉬이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에(?!) 바로 신청을 하고 보러가게 되었죠. 그래서 오늘 포스트는 이 초대를 통해서 보러간 제 8회 여성연출가전 마지막 작품, '헤어스튜디오 궁'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여성연출가전
처음에 '여성연출가전'이라고 해서 무척 호의적으로 본 것이 사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제 6회 여성연출가전에 출품되었던 작품 <어멈>을 보러 다녀온 적이 있기 때문인데요.그 때 평가에는 미처 적진 못했습니다만,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우리나라 버전으로 무척 맛깔스럽게 각색했었고 또 서사극의 묘미를 잘 살린 연극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여성연출가 전 자체에 무척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구요.
아무튼, 2회가 지나서 다시 보게된 여성연출가전. 이번에는 어땠는지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적성이 배어나오는 연극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영상은 국회의사당이 보이며 그 안에서 의원들은 대 난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아, 이 연극은 정치적인 목적성이 많이 들어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극에 목적성이 너무 뚜렷하게 부여되면 자연스럽게 주제가 좀 편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목적성에 얽매여 자유로운 표현이 제한받는 등 문제가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저는 연극이 시작되면서부터 걱정을 하면서 연극을 보기 시작했지요. <헤어스타일 궁>은 이를 부조리극의 형식으로 극복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헤어스튜디오 그리고 손님
그러나 사실 헤어스튜디오라는 거창한 이름을 사용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근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곳이고 이야기의 교환이 일어나는 곳 이상의 의미는 갖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헤어스튜디오라는 장점이 극에 그다지 묻어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품을 제외하고 헤어스튜디오이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 점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헤어스튜디오가 아니라 복덕방이어도 상관 없을 것이고 슈퍼거나, 식당에서 일어나도 전혀 상관없는 일들이었습니다. 장소는 적어도 제게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어요.
헤어스튜디오에는 공교롭게도 모두 남자 손님이 옵니다. 게다가 이 손님은 모두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어서 스튜디오에 찾아오게 됩니다. 그 목적이라는 것은 '헤어스튜디오 궁'의 주인인 '마담 궁'을 만나기 위해서인데요.
자신이 짝사랑하는 사람의 취향을 알기 위해, 사채를 쓴 후 갚아야 하는 날을 조금 미루기 위해, 자신의 돈을 갖고 튄 친구의 행방을 조사하기 위해, 재개발 도장을 찍기 위해서 이들은 '마담 궁'을 만나길 소원하고 '마담 궁'을 기다립니다.
마담 궁
모든 고객의 취향을 적어놓은 빨간 수첩을 가지고 있고, 대부업자들과 친분이 있으며, 이 동네의 실질적인 지배자에 이 사람의 말만 들으면 성공(혹은 자신의 꿈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진술들은 모두 마담 궁이 대단한 위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지 실제 마담 궁이 누구인지에 대한 단서로는 작용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각 인물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알게 된 정보라는 진술을 하면서 마담 궁에 대한 설명을 의도적으로 회피하지요.
마담 궁과 가장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으리라 생각되는 '나강도' 캐릭터가 있지만 연극은 그녀의 정신이 온전치 못한 설정으로 그녀의 진술의 신뢰도를 낮춰버리고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종합해봐도 '마담 궁'이 누구인지 유추할 수 없으며, 실존하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물들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마담 궁'[각주:1]을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입니다.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단순히 이들은 고도를 기다려야 하고, 왜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한 자리에서 고도를 기다리기만 할 뿐이지요. 고도는 오지 않고 매번 자신을 처음 보았다는 소년만이 '오늘은 바쁘고 내일은 꼭 오겠다.'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갈 뿐입니다.
<헤어스튜디오 궁>은 <고도를 기다리며>와 서사가 거의 일치합니다. 포조와 럭키[각주:2]는 없지만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역할을 맡고 있는 이들이 있고, 바빠서 당장은 안오고 늦어진다는 메신저는 핸드폰 문자메시지 혹은 '박 실장'역이 맡고 있지요.
이렇게 되는 순간 <헤어스튜디오 궁> 구성의 참신함은 단숨에 사라지고 맙니다. <고도를 기다리며>와 거의 동일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연극이 되어버리기 때문인데요. 더군다나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도가 미래, 꿈, 희망, 절대자 등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는다면 <헤어스타일 궁>에서는 뚜렷한 정치색 때문에 이 여지마저 대폭 감소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대신에 박 실장과 나강도의 대사를 통해서 어떠한 권력체계에 추종적으로 따르는 인간상을 제시하고는 있습니다만... 이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실험극의 매력이 살지 못한 연극.
프로젝터를 사용해서 영상을[각주:3] 중간중간 보여준 점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규모가 큰 공연에서 이미 다양하게 사용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실험적이라고 보기 어렵고, 서사의 구조도 결국 <고도를 기다리며>와 다를 바가 없어서 참신함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제가 모호[각주:4]하고 구성은 기존에 존재하는 구성과 비슷한 실험극. 어디에서 과감한 실험성을 찾고 그 매력을 느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다만, 연극에서 쉽사리 볼 수 없던 '정치'라는 제재가 등장했다는 점을 높이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관련 포스트 및 링크
- 연극, <어멈> - 브레히트 그리고 소외
- 연극, <수업> - 이게 어딜봐서 스릴러 연극이라는 것인가.
- <푸른관 속에 잠긴 붉은 여인숙 2> -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뭔데?
- 연극, <옥수수 밭에 누워있는 연인>을 보고왔습니다.
- 연극, <심판> - 부조리한 현상과 맞닥뜨리다.
- 연극, <수업> - 이게 어딜봐서 스릴러 연극이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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