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죽여주는 이야기' - 블랙코미디라 부르기엔 좀 아쉬운...
글 작성자: 레이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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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는 제 주관적인 해석과 연극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여주는 이야기
이진우, 남경화, 최종윤 외 출연, 2013.
이진우, 남경화, 최종윤 외 출연, 2013.
레이니아입니다. 오늘은 다소 늦게 글을 올리는 포스팅인데요. 오늘은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를 보고 온 이야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죽여주는 이야기>. 이야기는 많이 들었고 대학로에 있는 수많은 좌판에서 포스터는 봤지만 실제로 무슨 내용인지,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요. 궁금증이 조금씩 쌓여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보고 와야겠다… 라는 마음을 먹고 대학로에 있는 <죽여주는 이야기> 전용 극장, 삼형제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삼형제 극장)
대학로 정미소 극장 조금 못 가서 있는 삼형제 극장. 전면에서부터 <죽여주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는데요. 장기간 공연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극장 자체를 전용 극장으로 만들 정보면 정말 오래 상연 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극장에 들어가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죠.
특이하게도 <죽여주는 이야기>는 지정석이 아닌 비지정석입니다. 요새 비지정석 연극을 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 무척 신선했는데요. 그래서인지 티켓박스가 오픈하고 나서 사람들이 곧바로 극장 앞에 줄을 서더라고요… 저는 티켓박스 열리는 시간에 부지런히 찾아가는 취미는 있어도 비지정석을 기다리는 취미는 없어서 그냥 좋은 자리는 포기했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삼형제 극장은… 생각보다 많이… 낡았더라고요. 오랜 시간 동안 공연을 했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극장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요. <죽여주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짧게 하고 마무리 짓겠습니다.
블랙코미디
<죽여주는 이야기>는 자살을 안내하는 자살 안내자의 이야기입니다. 자살 안내자는 의뢰인에게 맞는 자살 방법을 추천해주고 이를 행동에 옮기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이 자살 안내자에게 마돈나라는 인물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요.
<죽여주는 이야기>가 갖는 웃음의 요소는 우선 죽음의 방식입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나 ‘샴푸의 요정’ 같은 자살 방법은 실제 사람이 죽는 방법치고 너무 우아하고 깜찍한 이름입니다. 어쨌든 이 모든 방법이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요. 그리고 희극화된 인물들의 몸짓입니다.
(조금 낡았던 무대)
마돈나는 생얼이라고 주장하며 온 얼굴을 팬더처럼 하고 왔고요. 마돈나의 친구인 바보레옹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엉성한 모습과 행동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자살 안내인은 어떤가요. 무척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사소한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등 구멍 뚫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단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죽음, 그리고 자살이라는 소재는 어느 정도 해학적으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결과물이 제 개인적으로 썩 훌륭하다고 보이진 않습니다만, 시도 자체는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물이 훌륭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블랙 코미디가 그 자체로서 웃음으로 작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죽여주는 이야기>에서 웃음을 담당하는 부분은 2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계산되지 않은 즉흥성과 다른 하나가 바로 소재를 비트는 블랙코미디적 요소입니다. 그런데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는 그 자체로 우습기보다는 즉흥성의 힘을 빌려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블랙코미디라는 하나의 요소가 온전히 자기 색을 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죽여주는 이야기>가 가진 블랙코미디적 요소는 아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주제의 약화로도 이어지는 문제가 되고요.
즉흥성
이런 순간적인 상황의 즉흥성은 <죽여주는 이야기>에서 많은 재미를 담당하는데요. 일례로 제가 봤을 때, 에어컨이 내려와 너무 춥다는 관객의 돌발적인 질문에 살짝 당황하면서도 다시 자신의 페이스를 찾고 에어컨을 끄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관객들에게 무척 재미있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즉흥성이 공연마다 다른 매력을 갖게 하고 결과적으로는 롱런할 수 있도록 하는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대가 때로는 즉흥적으로 사용되는 소재가 됩니다.)
그런데 이 즉흥성이 매력을 갖기 위해선 배우들이 끝까지 능청맞은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이 부분이 지켜지지 않고 배우가 상황에 무너져버린다면 이 연극은 더는 즉흥적인 연극이 아니라 그냥 만담에 그치고 말게 됩니다. 이런 부분에서 <죽여주는 이야기>는 조금 아쉬움을 보였는데요.
몇 가지 돌발적인 상황에 100% 대처하기는 어렵겠지만, 배우들끼리 일어나는 즉흥적인 요소에 배우들이 반응하여 수습이 위태위태해 보이는 모습이 종종 보였습니다. 끝까지 능청스러움을 보여줬다고 보긴 어려웠는데요. 배우들이 관객들과 함께 웃지 않고 자기들끼리 웃어버리는 순간 즉흥적인 매력은 모두 사라지고 관객이 극 밖으로 유리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관객을 극 안으로 끌어드리려는 시도를 다양하게 하는 <죽여주는 이야기>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사태가 되겠지요.
주제와 재미
시도 자체는 참신했으나, 우스운 부분이 너무 강해져 주제적인 면이 약해지는 것은 연극의 구성 측면에서 큰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주제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한데, 재미를 살리려는 욕심을 내다보니 주제를 다루는 많은 핵심적인 요소를 덜어내 버린 느낌이 들었어요.
자살이 결국은 어떻다는 것인지, 확실한 답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방향 정도는 제시해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결국 흐지부지 마무리되는 결말은 <죽여주는 이야기>를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재미있는 부분이 강화되면 반대급부라고 할까요? 진지한 주제가 옅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죽여주는 이야기>는 두 가지의 균형이 재미를 위주로 많이 쏠린 연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호불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 조금 아쉬운 연극이었어요.
재미있게 웃고 나면 또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연극보다야 낫지만, 이렇게 폐허처럼 남아버리는 주제의식이 관객에게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웃고 즐기다 휘발되는 연극이다.’라고 생각하며 관람하는 것을 추천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굳이 봐야 할 연극은 아니라는 말씀을 덧붙이고 싶고요.
· 관련 포스트 및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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