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칼렛 핌퍼넬' - 복면 영웅의 원조, 별봄맞이꽃.
글 작성자: 레이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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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는 제 주관적인 해석과 연극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칼렛 핌퍼넬
제임스 스완 연출, 박광현, 김선영, 양준모 외 출연, 2013.
제임스 스완 연출, 박광현, 김선영, 양준모 외 출연, 2013.
레이니아입니다. 오늘은 지난 3일. 프리뷰 공연을 보고 온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스칼렛 핌퍼넬>은 6일부터 오픈하는 뮤지컬인데요. 저도 그렇지만 많은 분께서 꽤 생소하게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국내에서는 초연인 작품인데요. 생소함을 느끼며 <스칼렛 핌퍼넬>이 상연 중인 역삼 LG아트센터로 향했습니다.
LG아트센터는 역삼역에 있는데요. 예전부터 LG아트센터 시설에 대한 호평을 자주 봐왔지만, 실제로 가본 것은 처음이라서 출발하기 전부터 무척 기대되는 곳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면서 강남을 가본 적이 얼마 없어서 신선하기도 했어요.
(휴대폰으로 찍은 안타까운 사진)
하필이면 제가 이날 카메라를 들고 오는 걸 잊어서 휴대폰 카메라로 모든 사진을 촬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더 예뻤는데 카메라와 제 내공 부족으로 많이 담아낼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요. LG아트센터에 도착하자 프리뷰 공연임에도 정말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표를 받아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자리도 무척 앞자리였는데요. 뮤지컬, 특히 대극장 뮤지컬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자리마다 느낄 수 있는 뮤지컬의 매력이 사뭇 다르다는 점입니다. 조금 멀리서 보면 전체적인 극의 모습과 짜임을 주로 보게 되고요. 조금 앞에서 보면 배우들의 세세한 표정 연기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따라서 이날은 자연스럽게 배우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자, 그러면 <스칼렛 핌퍼넬>에 대한 이야기, 시작합니다.
스칼렛 핌퍼넬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조금은 생소한 ‘스칼렛 핌퍼넬’에 대한 이야기부터 몇 가지를 조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1. 스칼렛 핌퍼넬(Scarlet Pimpernel)
스칼렛 핌퍼넬(Scarlet Pimpernel)이라는 단어부터 제겐 무척 생소했는데요. 우리말로 바꾸면 ‘별봄맞이꽃’을 뜻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낯선 ‘스칼렛 핌퍼넬’이라는 단어보다 ‘별봄맞이꽃’이 더 좋게 들리는 것은 제 기분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스칼렛 핌퍼넬>로 넘어가서요. 이는 극 중에서 프랑스 혁명정권에 대항하는 영국 귀족의 비밀결사대 이름(The League of Scarlet Pimpernel)이면서 비밀결사대의 수장인 퍼시 경(Sir Percy)의 가명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귀족인 퍼시 블레이크니는 평소에는 귀족 한량으로 지내면서 한편으로는 프랑스 혁명의 잔혹성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친구들과 함께 ‘더 리그’(The League of Scarlet Pimpernel)라는 비밀결사대를 결성하는데요. 극 중에서 스칼렛 핌퍼넬은 스러지지 않는 꽃이기에 비밀결사대에 적당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활약 후에 스칼렛 핌퍼넬 쪽지를 남겨 자신들의 일임을 알리기도 하고요.
2. 원작
<스칼렛 핌퍼넬>은 바로네스 오르치가 쓴 소설이 원작입니다. 헝가리 태생의 여성 영국 소설가인 바로네스 오르치는 이 작품으로 당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고 하는데요. 정체를 숨기고 영웅적인 일을 하는 ‘스칼렛 핌퍼넬’은 복면 히어로물의 시초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오늘날 등장하는 복면 히어로물이 등장하게 된 것이죠.
3. 프랑스 공포정치
다음으로 <스칼렛 핌퍼넬>을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 알아두면 좋을 프랑스 공포정치입니다. <스칼렛 핌퍼넬>의 배경이 되는 시기가 바로 이 프랑스 공포정치의 시기인데요. 이 시기는 로베스 피에르가 이끄는 공포의 혁명정권으로 1년 동안 1만여 명의 사람들이 단두대 앞에 섰던 무시무시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연대표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뮤지컬과 역사)
자세한 역사는 직접 찾아보시는 게 훨씬 재미있습니다만, 개략적인 프랑스 혁명사를 도표로 만들어보았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4. 시놉시스
시놉시스도 잘 적지는 않습니다만, 초연이니만큼 간단하게 시놉시스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국의 귀족 퍼시 블레이크니는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 마그리트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격한 혁명파인 쇼블랑과의 과거를 감추기 위한 마그리트의 노력과 쇼블랑의 협박으로 마그리트는 본의 아니게 중요한 정보를 쇼블랑에게 넘기게 되고, 이를 퍼시에게 들키면서 퍼시는 마그리트를 프랑스의 첩자로 오해하게 되며 차갑게 돌변합니다.
그리고 퍼시는 프랑스혁명의 잔혹성에 대한 분노를 느끼고 이대로 두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직접 활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리하여 6명의 귀족 친구들, 그리고 마그리트의 동생인 아르망까지 포함하여 더 리그라는 비밀 결사를 결성하게 됩니다.
더 리그의 활동으로 사형수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분노한 로베스 피에르는 쇼블랑에게 스칼렛 핌퍼넬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이를 위해 쇼블랑은 마그리트의 동생이자 스칼렛 핌퍼넬의 일원인 아르망을 체포하고 이를 인질로 마그리트에게 스칼렛 핌퍼넬의 정체를 알아내라고 협박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갈등의 역학 관계가 드러나고 퍼시와 마그리트의 사랑, 스칼렛 핌퍼넬과 쇼블랑과 로베스 피에르로 대변되는 공포정권과의 갈등이 주축으로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은 전개됩니다.
음악과 배우, 그리고 무대
프랭크 와일드혼은 다수 뮤지컬의 작곡을 맡았었는데요. 대표적인 작품이 <지킬 앤 하이드>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탓인지, 넘버링이 상당히 <지킬 앤 하이드>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새로이 하게 되었는데요. 이는 제 개인적인 생각이라 치부하더라도 <스칼렛 핌퍼넬>의 넘버링이 좋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킬 앤 하이드, 그리고 프랭크 와일드혼)[각주:1]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가 가미되며 노래의 호소력은 빛을 발하는데요. 저는 특히 쇼블랑 역의 양준모 씨가 좋았습니다. 노래는 물론이거니와 야욕에 찬 독선적인 느낌의 연기도 좋았어요. 마그리트 역의 김선영 씨도 연기와 노래 모두 훌륭했습니다. 후에도 기술하겠지만, 갈등하는 내면의 연기가 특히 돋보였던 것 같아요.
한편 퍼시 역의 박광현 씨는 노래를 들으며 살짝 불안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배우들보다 능글맞은 한량연기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영국 귀족 한량 퍼시로서 박광현 씨는 정말 최적의 캐스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극 중 능글맞은 연기에 많은 관객이 빵빵 터졌고요.
(캐스팅 표)
그 다음은 무대입니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저는 무대를 보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떠올랐습니다. 무대가 몇 가지 오브제를 중심으로 집약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인데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는 대표적으로 언덕 위 나무가 그랬다면 <스칼렛 핌퍼넬>에서는 단두대와 뱃머리가 그것이었습니다.
또한, 무대는 대립하는 두 축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스칼렛 핌퍼넬을 중심으로 한 반혁명주의(뱃머리)와 로베스 피에르 그리고 쇼블랑을 중심으로 한 혁명파(단두대)가 그것인데요. 다양한 움직임과 마술을 응용한 연출은 <스칼렛 핌퍼넬>의 재미를 살려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높은 완성도의 구성
다른 하나는 첫눈에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 퍼시와 퍼시가 차가워진 틈을 파고들어 오는 과거의 연인인 쇼블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마그리트의 서사가 있습니다. 이를 구조도로 담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구조가 상당히 매력적인 이유는 서사의 균형이 잘 잡혀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임의로 혁명파와 반혁명파의 갈등으로 ‘모험’, 퍼시와 쇼블랑의 갈등을 ‘로맨스’로 정의해볼게요. 다른 극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모험과 로맨스 두 가지가 모두 양립하는 것은 상당한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서사가 무너져 두 마리의 토끼를 다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요.
<스칼렛 핌퍼넬>은 이 축에 등장하는 인물이 거의 동일하며, 축에서 맡은 역할도 동일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빛나는 게 마그리트의 존재인데요. 이 두 가지의 축에서 중간자인 마그리트는 두 축을 묶어주는 역할과 동시에 자신의 위치에 따라서 힘의 균형이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며 갈등이 갈등으로서 작용하게끔 합니다.
이 지점에서 마그리트의 인간적인 고뇌가 잘 드러나고 있는데요. 이를 연기로 훌륭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마그리트의 고뇌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하나의 축씩 살펴볼게요. 우선 모험부터 보겠습니다. 이 부분에서 주로 등장하는 가치는 ‘신념’입니다. 혁명파, 특히 쇼블랑을 통해서 드러나는 신념은 혁명이 옳으며, 자신의 행동은 시민을 위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신념은 권력에 취했고 왜곡되어있지만요.
반면에 스칼렛 핌퍼넬을 통해서 드러나는 신념은 실천하지 않는 이상은 의미가 없으며,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혁명은 다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무고한 사람의 희생을 막기 위해 자신과는 상관없는 타국의 일에 목숨을 걸고 개입하고 있지요.
마그리트는 과거 혁명파에 몸을 담갔으나 혁명파의 모순을 깨닫고 반혁명파 쪽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를 폭로하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반혁명파의 일을 돕게 되죠. 이 일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동생을 볼모로 잡혀 스칼렛 핌퍼넬의 정체를 밝혀내야만 하는 상황이 그녀에게 갈등을 낳게 하죠.
로맨스를 볼까요. 로맨스의 가치는 당연히 ‘사랑’이겠지요. 쇼블랑은 과거에 자신을 떠난 마그리트를 계속해서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이 과연 순수한 사랑이냐는 차치하더라도 어쨌든 쇼블랑이 마그리트를 열렬히 쫓아다니며 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퍼시는 마그리트와 첫눈에 반해 6주 만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퍼시는 마그리트가 협박당한 것을 알지 못한 채 그녀를 프랑스의 첩자로 오인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 퍼시는 마그리트에게 차갑게 대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멈출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갈등하게 되지요.
마그리트는 퍼시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퍼시의 차가운 태도에 마음의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게 됩니다. 그 틈을 쇼블랑이 치고 들어오게 되고요. 이 부분이 장미정원에서의 만남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 아르망이 프랑스에서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의 방황은 절정을 맞게 됩니다.
<스칼렛 핌퍼넬>은 이 두 가지의 서사, 모험과 로맨스가 어느 하나도 무너지지 않고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극의 흐름 또한 자연스러우며, 동시에 긴장감을 살려서 흐름이 느리다는 생각을 못했는데요. 정말 <스칼렛 핌퍼넬>을 보는 동안 ‘정신없이’ 몰입해서 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결말도 예상할 수 있지만, 충분히 타당한 결말이었고 두 가지 서사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의 완성도가 높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네요.
뮤지컬이 재미있는 만큼 중언부언하다가 사족이 많이 길어진 느낌이 드네요. 하지만 <스칼렛 핌퍼넬>은 그만큼 괜찮은 뮤지컬이었습니다. 극의 구성이나 연출도 훌륭했으며, 무대 효과나 배우들의 연기, 노래부터 LG아트센터의 음향시설까지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평균 이상이었던 것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한번 보시길 추천합니다. 저는 감히 올해 결산에 Best 연극/뮤지컬을 다투는 작품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조심히 생각합니다.
· 관련 포스트 및 링크
-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 몸을 관통하는 카타르시스
- 뮤지컬, '스팸어랏' - 코미디 뮤지컬의 진수
-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사랑, 사랑, 사랑.
-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 시리즈의 완성
- 영화, <어벤져스> - 고민할 필요가 없다.
- 뮤지컬, '스팸어랏' - 코미디 뮤지컬의 진수
-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사랑, 사랑, 사랑.
-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 시리즈의 완성
- 영화, <어벤져스> - 고민할 필요가 없다.
- 상기 사진은 http://www.playdb.co.kr/artistdb/detail.asp?ManNo=3467 에서 발췌했음을 밝힙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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