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셜록 - 벌스톤의 비밀' - Stylish를 묻다.
글 작성자: 레이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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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는 제 주관적인 해석과 연극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셜록 - 벌스톤의 비밀
한재혁 연출, 김종현, 전슬기, 이현웅, 이중희, 박영아, 홍정호, 유미영 외 출연, 2012
한재혁 연출, 김종현, 전슬기, 이현웅, 이중희, 박영아, 홍정호, 유미영 외 출연, 2012
레이니아입니다. 오늘도 연극 포스트입니다. XD…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거지만 아무래도 제 블로그는 IT + 문화 생활 블로그로 굳어져가는 것 같아요. 제 시작은 잡탕이었으나 끝도 잡탕…이 되지는 않는군요.
오늘 이야기할 연극은 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탐정,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본격 스타일리쉬 연극..을 표방하고 있는 연극. <셜록 - 벌스톤의 비밀>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저도 소싯적에 추리 소설 참 많이 읽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황금가지의 <셜록 홈즈 전집>을 놓고 간간히 펼쳐보고 있구요. 그 외에도 <X의 비밀>이나 <Y의 비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같은 유명한 작품은 가지고 있어서 틈틈히 펼쳐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연극도 기본적으로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최근에 리뷰로 인사드렸던 <쥐덫>이 비슷한 소재지요.
그래서 연극 <셜록 - 벌스톤의 비밀>(이하 <셜록>)도 무척 관심이 가는 연극 중 하나였는데요. 평을 살짝 살펴보니 원작을 사랑하는 사람은 가급적 안보길 권한다고 해서 보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제법 저렴하게 표가 풀렸더라구요. 그래서 후회를 하더라도 한 번 보러가야겠다..!로 선회해서 2013년 첫 연극으로 보고 왔습니다.
물론, 후회했지만요.
그래서 다소 글이 살벌해질 것 같습니다만, 부드럽도록 노력해서 써보겠습니다.
무대구성
하지만 무대의 구성은 생각보다 무척 정교합니다. 정교함을 넘어서 좀 쓸데 없이 공들인 게 있다 싶을 정도로 무대의 여러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벽을 열었더니 스크린이 나오고 여기에 빛을 쏘아서 인물의 실루엣으로 사건을 표현 하는 등 다양한 무대 장치가 사용되었습니다.
소극장의 이점을 적극적으로 살린 장치들은 그 밖에도 많이 활용되었습니다만, 몇몇 장치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공들인 게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첫 장면에 나오는 책상이 있겠습니다. 전 처음에 엄청 신경을 많이 썼었는데요. 딱 첫장면에 나오고 그 이후엔 나오지 않더라구요…
이런 부분이 다소 산만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무대의 구성은 비교적 잘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과 배우
<룸넘버 13>에 나왔던 주인공과 호텔 지배인 역이 <셜록>에서 각각 더글라스와 맥도널드 경감으로 등장합니다. 무척 반가운 얼굴이면서 한편으로는 <룸넘버 13>이 생각나서 진지한 연기를 해도 웃겨보이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을 했는데요. 다행히 본인들이 개그를 해서 죄책감없이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개그가 어느 정도의 재미를 찾아주었을지는 몰라도 연극의 완성도를 방해했다는 생각입니다. 더군다나 맥도널드 경감은 원래 캐릭터와 전혀 다른 얼간이캐릭터로 나와버려서 (애초에 비중이 크지 않다 하더라도) 아쉬웠습니다.
1880년대 말 당시에, 알렉 맥도널드는 …(중략)… 나이는 젊었지만 그는 이미 자신에게 맡겨진 몇몇 사건에서 두각을 나타낸 믿음직한 수사관이었다. …(중략)… 재주 있는 사람은 한눈에 천재를 알아보는 법이다. 맥도널드는 재능과 경험 면에서 유럽 제일가는 이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할 정도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었다.
- 아서 코난 도일, 『셜록 홈즈 전집4 : 공포의 계곡』. 백영미 옮김, 황금가지, 2002, 20쪽.
인용부분을 살펴보아도 맥도널드 경감은 상당히 괜찮은 이미지로 소개가 되는 반면에, <셜록>의 맥도널드 경감은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 광고를 하는 엉성하고 당하기만 하는 캐릭터로 등장하더군요. 물론, 각색자의 의도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는 부분이지만 바뀐 맥도날드 경감이 연극에 즐거움을 주느냐 물어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산만하기만 할 뿐이에요.
(헷갈려서 원작을 다시 집어들었습니다.)
주변인물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주변인물에 대해서 마저 이야기를 하죠. 벌스톤 영주관의 안주인인 애슐리와 하녀인 아메스. 둘다 무척 미녀 분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에요. 개인적으로 연기도 어색해보였고 목소리도 어색했습니다. 이 두분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한 번 더 할 기회가 있을테니 이만 넘어가겠습니다.
중심인물인 셜록과 왓슨입니다. 개인적으로 셜록 홈즈에게 너무 실망했습니다. 원작을 좋아하는 사람이 보지 말라는 이유를 적극 공감했는데요. 간단히 얘기해서 ‘셜록 홈즈’의 괴팍함을 상당히 독특하게 재해석한 것 같습니다. 좀더 적나라하게 얘기해서 변태 약쟁이인줄 알았어요… 무척 유쾌하고 실없어 보이지만 그 속에서 번뜩이는 추리력을 선보이는 천재형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냥 이상해보여요.
<셜록 홈즈>가 1인칭 관찰자 시점 소설의 대표주자(!)라는 것. 알고 계시죠? 왓슨은 여기서 주 화자인데요. 소설에서는 셜록 홈즈의 괴팍함을 어느 정도 제어해주는 무게있는 퇴역 군의관이죠. 그런데 연극 <셜록>에선 준수한 미남으로 나오는 대신에 셜록 홈즈의 페이스에 함께 넘어가는 얼간이 역으로 나옵니다.
전반적으로 인물과 배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는 구성부분과 맞물려 제가 이 연극을 보고 한숨을 쉬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어요. 안타까웠습니다.
Stylish
지레짐작컨데 연극 <셜록>은 Stylish라는 단어를 오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극 소품의 디테일을 살리고 선남선녀를 배우로 올린다고 해서 연극이 스타일리시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유행을 따르기’위해서 요즘 유행하는 ‘코믹극’형태로 만들어서 올린 게 스타일리시일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보이는 부분에 있어서 세밀한 부분을 살리고 볼거리가 많아진다면 소위 스타일이 어느 정도는 좋아지겠죠. 하지만 스타일리시라고 일컫기 이전에 연극의 완성도가 전제되어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연극의 구성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연극을 관람하는 제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지만, 연극 <셜록>은 연극의 완성도보다는 단지 눈에 보여주기 위한 부분만 신경 쓴 게 너무 많이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마치 이들이 이야기하는 스타일리시는 ‘가벼움’이란 단어와 유의어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죠.
(스타일리시... 어렵네요...)
원작과 구성
그런데 원작과 달리 추가된 부분이 있는데요. 홈즈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포록을 쫓는 부분입니다. 전 이 부분을 보고 벙쪘습니다. 도대체 이 부분을 왜 굳이 만들어서 집어넣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더라구요.
술집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에서 셜록과 왓슨을 제외한 배우들이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오릅니다. 특히 여자 두 분이 가면을 쓰고 무척 끈적끈적한(?!) 분위기를 연출하시는데요. 이 부분이 연극의 극 초반이라 처음엔 ‘여기 등장하는 여자 배우가 누굴까?’ 싶다가 연극을 다 보고 나서는 ‘아까 그 장면 연기하려고 나왔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자 두 분의 연극의 존재감은 차치하더라도 이 두분의 외모와 몸매를 연극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았습니다. 후에 애슐리가 나오는 부분에서 앞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보고 홈즈가 담배를 떨어뜨리는 등, 구성에서도 이들의 외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절대로 이건 스타일리시가 아닙니다…
원작을 축약해놓은 스토리기 때문에 구성이 아쉬운 부분은 크게 없었습니다만, 몇몇 추리는 힌트없이 무작정 진행되고 서둘러 진행되어 그다지 공감되지 않더군요. 처음에 연감을 찾는 부분도 전화번호부라고 대사를 하던데, 도대체 어떤 전화번호부에서 ‘There is danger’ 같은 부분이 나오나요…
이후의 추리도 비슷합니다. 마치 ‘추리는 내가 할테니 넌 그냥 잠자코 보기나 해’라고 하는 것 같은데요. 셜록 홈즈 원작도 조금 그런 뉘앙스가 있기는 합니다만, 결과적으로 이 연극을 추리극이라고 하기엔 추리극에게 좀 미안해질 것 같구요. 그냥 셜록 홈즈를 소재로 하는 연극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13년의 첫 스타트를 끊은 <셜록>. 전 별로였습니다. 어느 정도 감안을 하고 갔지만 무척 실망하고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작을 보셨거나 혹은 추리소설을 좋아하시거나, 저같은 근본주의자…(?!) 분들에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냥 요새 유행하는 가벼운 코믹극을 보는데 ‘셜록 홈즈’가 나온데!… 정도의 느낌을 원하신다면 <셜록>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게 도와줄 것입니다... 죄송해요 전 이 이상으로 도저히 칭찬할 수가 없네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줄이느라 조금 힘들었네요. 그럼 지금까지 연극 <셜록 - 벌스톤의 비밀> 감상의 레이니아였습니다.
덧. 연극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원작에서는 영국을 떠나 남아프리카로 떠나던 더글라스는 결국 죽음을 맞습니다. 슬픈 이야기죠.
· 관련 포스트 및 링크
- 연극, '쥐덫' - 정극의 신선함
- 연극, <룸넘버 13> - 전형적인 레이쿠니의 연극
- 연극, <로맨틱 코미디> - 제목이 함정.
- 연극, <저는 여섯살입니다.> - 눈물을 강요한 연극.
- 연극, <대디> - 정신없이 웃을 수 있는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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